비행을 꿈꾸는 홀씨
피는 꽃은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지는 꽃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꽃으로 피어나는 생명은 아름답고 지는 꽃도 저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지는 꽃은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다. 금관화 꽃은 우아하고 품격이 있는 식물이다. 꽃송이는 작지만 생긴 모양새는 화려하면서 정갈하다. 작은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 차례에 이어 씨 맺는 모습도 일품이다. 갈색의 얇고 길쭉한 씨앗이 담긴 큼지막한 주머니가 열리면서 씨앗을 태우고 날아갈 깃털 같은 하얀 날개가 흩어져 나온다. 가볍고 부드러운 흰 날개는 씨앗을 매달아 바람 타고 훠이 훠이 날아간다. 고로 온도와 바람만 잘 맞으면 동네방네 금관화 싹이 피어난다. 꽃과 씨앗 주머니의 관계는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이 꽃이 씨앗을 맺기까지 수고해 준 이가 있다. 바로 벌과 나비 곤충들이다. 꽃은 벌을 달게 받아들인다. 꽃잎 속 아늑한 방은 벌 한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맞춤형 공간이다. 수많은 꽃송이를 앞에 두고 쉼 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온몸에 꽃가루를 묻힌 벌은 우리가 밥 먹고 물먹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인 것이다. 곤충을 통해 꽃은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고 곤충은 꽃을 통해 생존해 나간다. 서로 상생 관계이다. 피어날 때는 피어야만 했던 소명이 있고 이제 그 소임을 다한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다. 꽃이 핀다는 건 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꽃 이후에 남는 그 무엇을 위한 준비이다. 우리에게 꽃은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고 석 달 열흘 붉은 꽃 없듯 아주 잠시만 머물러 있을 뿐이지만 진 후에 식물이 남긴 것은 한 송이 꽃보다 큰 생명의 탄생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꽃처럼 마음을 열고 세상을 대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단 한순간도 깨어있지 못하고 단 한 번도 꽃잎이 보이지 못한 채 그걸 인생이라고 한탄도 하고 위로도 하며 생존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 비로소 피어나야 열매를 맺듯 사람은 의식이 깨어날 때 성숙한 사람이 된다.
'꽃이 진다함은 결실의 예고편이다.' 오로지 꽃으로만 피어나는 꽃과 열매에 의미를 두고 피어나는 꽃은 어딘지 달라 보인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저 스스로 살아가는 나무와 식물의 열매는 진하고 달고 싱그럽다.
요즘처럼 건강, 자연, 생태 관심이 늘어나는데 반해 그 배경이 되어줄 우리 작물에 대해선 여전히 소홀한 점은 아쉽다. 본래 식물의 역사와 보존을 위한 한 걸음을 우리 같이 시작했으면 한다. 식물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식물의 생태와 특성, 식물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친자연 식물 자원의 가치에도 관심을 가져봐 주길 바라본다.
[사진: 1 금관화 꽃, 2 열매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