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레스터 마을의 농장 Red Leicester

뜻밖의 환대

by 민희 치즈

영국 중부 레스터셔 Leicestershire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 건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업턴 UPTON이라는 마을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표지판이 길목에 우뚝 서 있었고, 나는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적막한 곳에서 스파큰호Sparkenhoe 농장의 입구를 발견했다.

치즈 제조장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잠시 머뭇거리다 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더니 하얀 작업복에 머리망을 쓴 아주머니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다봤다. 나는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한 뒤 레드레스터 치즈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농장주가 이곳에 없어 허락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탈리아 브라 Bra에서 치즈 박람회가 열리는 주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주까지 머물렀던 퀵스 데어리 사람들도 모두 브라로 떠난다고 했기에 스파큰호의 치즈 메이커들도 브라에 있을 거라 짐작했다. 다만, 농장주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 미리 말을 전해놓을 작정으로 찾아온 것이고 며칠 기다릴 각오가 충분히 돼 있었다.


“저, 실은 짐작하고 왔어요. 지난주에 남부에 있는 퀵스 데어리에 머물렀는데, 거기 사람들 대부분이 브라에 간다고 했어요. 근처 캠핑장에서 머물며..”

그런데 그녀는 퀵스 데어리 이야기에 급작스레 경계가 풀린 듯했다. 퀵스 데어리와 3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건만 꼭 옆집 이야기를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더니 전화기를 들고 나와 이탈리아에 있는 농장주에게 바로 연락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데이비드가 허락했어요. 대신 당신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네요. 직접 연락하고 싶다고요. 내일이 레드레스터 치즈를 만드는 날이에요. 아침 8시까지 여기로 오면 돼요.”

갑작스러운 허락에 되레 의아한 얼굴을 한 건 나였고 그녀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으로,

“사실 우리는 작업장에 아무나 들이지 않아요.”

라며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공간임을 못 박듯 말했다.

처음 나와 인사를 나눴던 그녀, 사실은 무지 친절한 치즈 메이커였다. 그녀는 치즈에 대해 지식이 많았고 열정도 높아 질문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바로 해 주었다.



내가 퀵스 데어리를 떠나던 날, 메리는 치즈 박람회에 참여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브라로 떠났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그 박람회에는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치즈 제조자들이 대거 참가하기에 박람회 기간 동안에는 대부분의 치즈 농장을 방문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나 또한 근처 소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다 닷새 만에 농장을 찾아온 것이었는데, 농장주인 데이비드 클라크 David Clarke는 아직 이탈리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레드레스터를 마음껏 보고 있으라고, 심지어 부모님 집 주소를 알려주며 잠자리가 해결될 거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남겨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타국에서 온 내게 말이다.


**흔히 ‘브라 치즈 페스티벌’이라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단지 ‘Cheese’ 한 단어일 뿐이다. 브라는 슬로푸드의 진원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브라 치즈 페스티벌은 격년으로 9월 셋째 주에 나흘간 열리는데, 참가 인원이 15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축제다. 유럽의 주요 치즈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일 치즈에 관한 심도 깊은 콘퍼런스가 열린다. 상세한 일정은 cheese.slow.com에 소개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