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다시 태어난 레드레스터

Red Leicester born again

by 민희 치즈

레드레스터는 영국 중부 레스터셔 지역의 치즈다. 붉은색에 가까운 오렌지색 치즈여서 ‘레스터의 붉은 치즈’라 불리기도 한다. 이 붉은색은 치즈를 만들 때 식물성 염색제인 ‘아나토Annatto’를 첨가해 물들인 것인데, 1800년대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에서 아나토를 수입하기 전까지는 솔나물을 염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렇게 솔나물을 이용해 색을 낸 치즈는 ‘레스터셔 치즈’, 아나토를 이용해 색을 낸 치즈는 ‘레스터 치즈’**라 불렸다. 솔나물 염색의 레스터셔 치즈는 아나토를 사용한 레스터 치즈보다 옅은 붉은색이었다.

**아나토를 이용해 만든 레스터 치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레드레스터 치즈’로 이름이 바뀌었다.

런던 닐스야드 데어리에 진열된 스파큰호의 레드레스터는 옆의 치즈들에 비해 도드라질 만큼의 붉은색을 띤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제조자(소규모 농장 포함)가 아나토 염색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아나토가 치즈 제조에 필수적인 재료가 아닐뿐더러 구입하는 데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레스터 치즈는 고유의 붉은빛을 낼 수 없게 됐고, 레스터 치즈만의 독특함을 잃자 판매량도 떨어졌다. 여기에 영국 정부가 우유 사용까지 제재하자 레스터 지역의 많은 치즈 농가는 결국 문을 닫게 됐다.

1922년부터 레스터셔 서쪽 백워스Bagworth 에서 농장 운영을 하며 마지막까지 레스터 치즈를 만들어온 로버트 셰퍼드 Robert Shephe, 그는 지역의 정육점과** 치즈가게에 공급을 하며 판매를 유지했으나 전쟁 중 여러 사정이 어려워지자 한동안 치즈 제조를 멈추었다. 셰퍼드는 전쟁이 끝난 후 1948년부터 레드레스터 치즈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사이 생겨난 대규모 치즈 제조자들에게 밀려 결국 1956년 농장 문을 닫았다.


**유럽에는 정육점과 치즈 가게가 같이 운영되는 곳이 많다. 정육점에는 생고기만이 아닌 숙성 햄 등이 함께 있는데 숙성 식품이다 보니 치즈와 이질감이 없다. 여기에 더해 햄과 치즈를 함께 넣어 즉석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판매도 한다.


이렇게 명맥이 끊기는가 싶었던 레드레스터 치즈가 부활한 것은 2005년이다. 레스터셔 외곽에서 젖소 농장을 운영하던 데이비드 클라크와 조 클라크 부부가 레드레스터 치즈 제조법이 적힌 낡은 노트를 발견한 것이다. 영국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레드레스터 치즈를 만드는 단 한 곳의 농장, 나는 그 유일한 장소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 단락은 Trevor Hickman, Historic Cheese DB Publishing (1 May 2009)를 참조했다.-


낡은 노트에 적힌 레드레스터를 발견해 50년 만에 치즈를 재탄생시킨 농장의 대표 데이비드 클라크.


치즈에 주홍색 내기

솔나물

학명은 Galium verum으로, lady’s bedstraw 혹은 yellow bedstraw라고도 불린다. 유채처럼 노란 꽃을 피우는 꼭두서니과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를 물에 넣어 끓이면 붉은색 염료가 되어 오래전부터 레스터셔 치즈에 색을 내는 데 사용됐다. 치즈에 염료를 사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햇빛을 잘 받고 자란 풀을 먹인 젖소에게서 짜낸 우유에는 카로틴(당근 등에 함유된 붉은 색소) 성분이 많이 들어가 치즈를 만들면 노란빛이 감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색이 있는 치즈가 좋은 치즈라는 믿음이 생겨났고, 염료를 첨가하는 치즈들이 생겨났다.

솔나물은 치즈를 만들 때 우유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레닛으로도 사용된다. 잎과 줄기를 다져 끓인 다음 걸러내면 식물성 레닛이 되는데, 이걸 쓰면 동물성 레닛을 쓴 것보다 응고 시간이 긴 대신 커드의 질감은 더 부드러워진다.


아나토

아나토는 잇꽃 나무 Bixa Orellana의 씨앗으로, 브라질 원주민들은 이 씨앗을 갈아 입술에 바르거나(때문에 ‘립스틱 나무’라고도 한다) 몸에 바르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아나토가 영국에 처음 수입된 시기는 19세기다. 워털루 전쟁(1815)에서 프랑스에 승리한 영국은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은 뒤 무역을 시작했는데, 이때 포르투갈 제국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들여온 것이 아나토다. 보통 씨앗을 갈아서 가루로 사용하거나 물에 개어 반죽처럼 만들어 사용하거나, 아니면 뜨거운 물에 우려내 사용한다. 옅게 사용하면 노란색, 짙게 사용하면 붉은색이 되며, 치즈뿐만 아니라 버터, 소시지, 빵 등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식품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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