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의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치즈 1

남다른 랭커셔 치즈 만들기 Lancashire Cheese

by 민희 치즈

랭커셔 치즈의 커드


커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그 성질이 무한히 바뀔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알려준 치즈가 바로 랭커셔다. 첫 치즈 여행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농장을 다니면서 치즈 제조 과정을 지켜봤지만 ‘커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치즈든, 우유에 레닛을 넣고 응고된 커드를 자르고 훼이를 빼내는 과정까지는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른 커드를 어떤 모양의 몰드에 넣는지, 어떤 환경에서 숙성시키는지, 숙성 기간에 따라 어떤 종류의 치즈가 되는지 등 치즈 제조가 ‘진짜로’ 시작되는 건 커드 이후의 과정부터라고 생각했다.

베트 깊숙이 커드 나이프를 넣어 커드를 자른 후 베트는 1시간 동안 휴식을 가졌다. 휴식 전 베트 내부의 온도를 측정하는 그레이엄.

작업장으로 돌아오자 레닛을 부어둔 우유는 단단한 커드로 변해 있었다. 그레이엄은 배트 깊숙이 나이프를 넣어 커드를 자르기 시작했다. 커드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잘렸는데 부드러운 젤리처럼 탄력이 있었다. 이제 더 작게 자르겠지 싶었는데 그레이엄은 작업이 끝났다고 했다.

“이렇게 1시간을 둘 거예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레이엄을 바라봤다. 수분이 많은 연성 치즈는 커드를 크게 자름으로써 치즈 속에 수분이 남아 있게 하는 반면, 수분이 적은 경성 치즈는 수분을 최대한 빼내기 위해 커드를 쌀알 크기로 자른다. 그런데 랭커셔는 단단한 치즈임에도 커드의 크기가 큰 편이었다.

1시간 뒤, 배트 배수구를 열어 훼이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훼이가 반 이상 빠져나가자 배트 아래로 가라앉은 커드가 드러났다. 에이미와 세라는 납작한 사각형에 모양의 작은 삽처럼 생긴 레이들 ladle을 들고 와 가장자리의 커드만을 떠서 배트 가운데에 쌓았다. 레이들로 커드를 떠내면 커드 사이사이에 고여 있던 훼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기다란 타원형인 배트를 따라 돌면서 커드를 계속 떠내자 배트 안에는 육상 트랙처럼 훼이가 흐르는 물길이 만들어졌다. 1시간 반 동안 에이미와 사라는 허리 한 번 펴지 않고서 4미터 길이의 배트를 돌며 커드를 떠내 옮겼고, 쌓이고 쌓인 커드는 서로의 무게에 눌려 부피는 줄고 질감은 단단해졌다.

기다란 타원형인 배트를 따라 돌면서 커드를 계속 떠내자 배트 안에는 육상 트랙처럼 훼이가 흐르는 물길이 만들어졌다. 레이들을 45° 각도 세워야 커드를 떠낼 수 있다.
한시간 반 동안 베트 가장자리를 트랙처럼 돌며 커드를 쌓아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비로소 단단한 커드만 남게 된다. 이 커드를 나이프로 잘라 옆의 탱크로 옮겨야 한다.


이틀째부터는 나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커드 떠내는 작업을 함께했다. 옆에서 볼 때는 푹푹 쉽게 떠지는 것 같았는데 막상 레이들을 들고 나서니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깊이 1미터의 배트 안으로 허리를 굽혀 커드를 떠내려 하자 레이들이 커드 사이에 압축되듯 붙어 빠지지 않았다. 진흙을 삽으로 뜰 때 진흙의 높은 밀도가 삽에 압력을 가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진흙 속 삽만큼은 아니었지만 커드는 매번 처억처억 압력을 밀치는 소리를 내야 겨우 떠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커드를 떠내고 있으려니 에이미가 나를 향해 레이들을 45° 각도로 세워 보였다.

“경사를 만들면서 떠내야 훼이가 지나가는 물길이 생겨요.”

에이미의 말대로 레이들을 조금 세워 커드를 사선으로 떠내니 압력이 약해지고 훼이가 흐르는 물길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훼이는 배트 외곽을 따라 타원형을 그리며 빠져나가야 하는데 물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커드를 배트 가운데에 쌓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에이미가 할 때는 마치 이미 있던 길인 양 훼이가 잘 흘러나갔지만 나는 커드를 떠내는 깊이부터 균일하게 맞추지는 못해 물길이 울퉁불퉁해지면서 막혀버렸다. 더구나 떠내는 속도가 느려 가운데에 쌓아 올린 커드가 자꾸 밀려 내려왔다. 그들이 왜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커드를 떠냈는지 직접 해본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작업은 1시간 반이 지나서야 끝이 났는데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곧바로 2차 작업에 들어갔다. 수분이 빠져 단단해진 커드를 작은 블록으로 자른 후 바로 옆에 있는 너비 2미터, 폭 1미터 크기의 사각 탱크로 옮겼다. 남은 훼이를 마저 빼내기 위해서다. 찜통처럼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탱크에 흰 천을 깔고 커드를 채우고 패널로 덮은 다음 공기압 호스를 꽂아 압축으로 눌러 훼이를 빼낸다. 5분 후, 패널을 치우고 압축돼 단단해진 커드에 가로세로 선을 그어 작은 블록으로 잘라 다시 일일이 손으로 10여 분간 부순 후 다시 패널을 덮는다. 이번엔 5분이 아니라 1시간 동안 압축한다. 패널을 치우고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눌린 커드를 손으로 부수는 작업만 20분이나 했다. 이렇게 해야만 커드 속 훼이를 최대한 많이, 골고루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총 세 번 반복한 뒤, 마지막에는 패널을 덮은 채 다음 날까지 눌러둔다. 오후 4시, 온몸이 녹초가 된 뒤에야 마침내 오늘의 작업이 끝났다.

찜통처럼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탱크에 흰 천을 깔고 커드를 채우고 패널로 덮은 다음 공기압 호스를 꽂아 압축으로 눌러 훼이를 빼낸다.

커드를 눌렀던 패널을 치우고 압축 돼 단단해진 커드에 가로세로 선을 그어 작은 블록으로 잘라 다시 일일이 손으로 10여분간 부순 후 다시 패널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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