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의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치즈 2

모슬린 작업에서 저장까지 Lancashire Cheese

by 민희 치즈

랭커셔 치즈, 몰드 작업에서 모슬린 씌우기 작업까지.


다음 날, 탱크 안에서 패널에 눌린 채 하룻밤을 보낸 커드는 납작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다. 이를 커드 나이프로 작은 블록으로 잘랐다. 밤새 압축돼 수분이 빠질 대로 빠진 커드는 손으로 부수기 힘들 만큼 단단했는데 이번엔 손이 아닌 분쇄 기계에 넣어 갈아냈다. 분쇄 작업이 정리되자 그레이엄이 작업장 한쪽에서 바퀴 달린 커다란 플라스틱 탱크 두 개를 끌고 왔다. 하나는 비어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블록 형태로 잘린 커드가 반쯤 채워져 있었고, 무심결에 뒷걸음질 칠 만큼 시큼한 냄새가 밀려왔다.

밤새 압축돼 수분이 빠질 대로 빠진 커드는 아주 단단해 커드 나이프가 지나가기도 힘들만큼 밀도가 높았다. 나이프로 자른 블럭은 분쇄 기계로 옮겨졌다.

“냄새가 많이 나죠? 엊그제 만든 커드예요. 오늘이 사흘째죠.”

매일 아침, 작업장에 도착하면 이틀 전에 만들어둔 커드가 담긴 이동식 탱크를 항상 볼 수 있었다. 탱크에 얼굴을 살짝만 가까이해도 시큼한 냄새가 물씬 올라오는데 랭커셔 커드의 산성도는 일반적인 커드보다 약 4배나 높단다. 보통은 커드가 발효되어 산성도가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조 과정 중 훼이를 어느 정도 빼내자마자 바로 분쇄해 소금을 섞지만 랭커셔에서는 발효가 진행되도록 사흘 동안 상온에 커드를 내버려 둔다!

사흘째 숙성 중인 커드의 표면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훼이가 빠져나와 더 건조한 상태였다.

나는 도대체 랭커셔 치즈의 끝을 짐작할 수 없었다. 경성 치즈임에도 커드는 크게 자르고, 수분이 가득한 커드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훼이를 빼내고, 압축으로 단단해진 커드는 일일이 손으로 부수고, 이제는 사흘간 묵힌 커드를 사용한다니. 그레이엄이 두 종류의 커드를 손가락으로 으깨어 보여주며 말했다.

“만든 지 사흘째인 이 커드는 질감이 크림 같지만 전 날 만든 이 커드는 아직 부슬부슬한 알갱이가 있고 신선한 맛이 나죠.”

발효가 진행될수록 커드는 뭉개지듯 부드러워진다. 랭커셔 치즈는 사흘 된 커드와 전날 만든 커드를 반반씩 섞어 사용하는데, 늘 이렇게 이틀 전에 만든 것과 하루 전에 만든 것을 함께 써야 하기에 랭커셔 농장은 하루도 쉴 수가 없단다.


다음 과정부터는 여느 치즈와 비슷했다. 분쇄기에 넣어 잘게 갈린 커드에 소금을 넣은 다음, 마침내 몰드에 담는다. 몰드에 담긴 커드는 작업장 벽을 따라 늘어선 수동식 압축기에서 수분을 뺀다. 소금을 넣는 이유는 삼투압으로 커드 속에 남은 그나마 수분조차 더 빼내기 위해서란다. 단단한 랭커셔 치즈의 기초가 이렇게 완성되었다.

몰드안에 모슬린을 넣은 후 커드를 채워 넣은 다음 비로소 치즈 압축기에 들어갈 수 있다.

다음 순서는 당연히 ‘모슬린 라드 작업’ 일 것 같지만, 랭커셔 치즈는 여기서도 남달랐다. 먼저 24시간 동안 수동식 압축기 아래에 있던 치즈를 몰드에서 꺼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윗면과 아랫면을 작은 나이프로 다듬는다. 독특한 것은 이 과정에서 나온 치즈 부스러기들을 버리지 않고(다른 농장에서는 잘라낸 부분을 버렸다) 치즈 윗면에 올린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둥근 모슬린 두 장으로 치즈 위아래를 덮은 다음 원통형 모슬린을 씌웠다. 이 원통형 모슬린은 양 끝에 끈이 달린 형태로, 치즈에 씌우고서 끈을 잡아당겨 묶는 식이다. 후드티셔츠의 모자에 달린 두 줄을 잡아당기면 모자가 오므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라드를 접착제 삼아 모슬린을 붙였던 이전의 농장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렇게 모슬린을 씌운 치즈를 다시 몰드에 넣어 압축기로 2시간 동안 누르면 치즈 표면에 모슬린이 말끔하게 붙었다. 이를 서늘한(13℃) 저장고에 하루를 두며 표면의 수분을 말린 뒤, 라드가 아닌 중탕으로 녹인 무염 버터를 모슬린이 씌워진 표면에 바른다. 여기까지가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지 닷새째다. 닷새째에야 비로소 치즈는 숙성 창고에 입성하게 된다.

수동식 압축기 아래에 있던 치즈를 몰드에서 꺼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윗면과 아랫면을 작은 나이프로 다듬는다.
이 원통형 모슬린은 양 끝에 끈이 달린 형태로 치즈에 씌우고서 끈을 잡아당겨 묶는 식이다. 후드티셔츠의 모자에 달린 두 줄을 잡아당기면 모자가 오므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농장에서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숙성창고는 냉장용 팬이 쉴 사이 없이 돌아가 퍽 시끄러웠다. 숙성 창고로 옮겨진 치즈는 13℃의 온도에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치즈 아이언을 들고 온 그레이엄이 숙성 3개월째인 치즈들을 골라 맛보게 해 주었다.

“랭커셔는 딱 3개월 숙성이 좋아요. 질감이 부드럽고 맛이 강하지 않거든요.”

그 치즈는 오전에 맛본 6개월 숙성 치즈보다 신맛이 덜하면서 그레이엄의 말대로 부드러웠다. 나는 그때까지 치즈를 살 때 기왕이면 숙성기간이 긴 것을 고르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건조해지고 더 단단해진 치즈를 잘라먹을 때면 깊숙이 숨어 있던 치즈 맛을 찾은 듯한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랭커셔 치즈는 오랜 숙성 끝에 생겨나는 진한 맛보다는 짧은 숙성이 본연의 맛을 잘 드러내는 듯했다. 정말이지, 제조 과정에서부터 숙성 후까지 어떠할 것이라는 예측을 전부 빗겨 간 치즈였다. 런던의 닐스야드 데어리에서는 랭커셔 치즈를 8개월까지 숙성해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래 숙성시킨 랭커셔 치즈 맛을 좋아하는 고객도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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