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유통기한
안타깝게도 기가 막힌 문장은 휘발성이 높다.
샤워하면서 생각한 문장들 통편집 실화냐.
여러 이유로 엄마는 슬펐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울음을 삼키며 죽으려고 한강을 나섰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듣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이별 후 재회한 20대 초반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슬퍼졌다. 나는 뱃속에서 슬픔이 익숙해져버린듯했다.
엄마가 나를 뱃속에 품었을 때는 절망, 우울, 미움, 분노의 절정의 시기였다고 한다. 열 달간 이런 것들이 나의 뼈로 피로 세포로 스며들었고 내 몸에는 내가 의도적으로 가져오지 않은 감정과 정서들이 많았다.
게다가 부모님의 헤어짐으로 대여섯살의 나이에 시골 조부모님댁으로 보내진 후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이 어린 마음에 참 많았다. 어른들은 물어보면 안되는 게 너무나 많았다. 그저 보고 느끼고 담아두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점점 말이 없어졌다.
당시 중풍으로 움직임이 불편했던 할아버지에게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ㄱㄴ 선과 점이 문장이 되고 책이 되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지식이 되는 과정은 경이로움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만해도 가슴뛰는 일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안양에서 유년을 보냈다. 인덕원 사거리에 살았는데 국민학교는 과천으로 입학했다. 버스 통학을 시작하며 오가는 길이 고되었다.
그때 내겐 가장 편안한 공간이 도서관이었다.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약 12년의 기간동안 나에게 가장 중요도가 높았던 공간이자 장소. 그때는 사람보다 공간에 대한 안정감이 컸다. 책 속에서 다양한 세상을 만났다. 절망, 우울, 미움, 분노 등을 볼 때마다 피하고 싶고 나의 흉하고 초라한 거울이 슬펐다.
얼굴은 까맣고 잘 웃지 않았다. 말도 없었다. 2차 성징이 일어나던 13~15세 무렵, 책을 통해 성격을 좀 바꿔보자 싶었다. 잘 웃고 명랑한 캐릭터로 과하게 성격 변신을 시도했다. 마음 먹은 탓인지 어쩐일인지 15~16살 사이에는 11센티미터 가량 키가 급격히 크고 내 외모는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몸속에 스며든 미움은 몸 크기만큼 늘어난듯 예민하고 까칠했다. 오빠와는 견원지간 처럼 싸웠다.
오빠
그렇게 싸우기만 했던 오빠가 2005년 봄에 몸을 떠나고 날 계속 아프게 했던 것은 '오빠가 나를 좋아했다'는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내가 예민함에 오빠를 미워했지 오빠는 늘 나를 좋아했다. 뼈와 살에 스며든 것들이 조금 변화했지만 많이 바뀌진 않았다. 20대에도 난 미운 아이였다. 미움이 몸속에 갇히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라 아프다. 키가 자라는 것이 멎은 스무살 부터 나는 아팠다. 꽤 오랜 시간 슬픔과 미움을 저항하느라 즐거움을 찾아다녔다. 춤, 예술, 문화...그 속에서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지만 나는 우울했다.
2011년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진행된 <내면의 헬스코치>라는 보완의학 시리즈 강연이 있었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중장년층이었고 나는 무척 젊은 편이었다. 그중 정신과전문의 김영우 선생의 강연에서 우울은 어떤 영적 각성의 신호라는 이야기에 귀가 기울여졌다. 실제로 정신과 질환이라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의식과는 별도로 분류된 아주 단순하고 한정적인 체계이므로 마음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