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아버지를 향해 미운 감정을 일으키고,
엄마의 무심한 말에 쉽게 상처를 지어낸다.
금세 위축되고 쭈그러든다. 자신감이 없다.
이런 나를 잘 감싸 안고 품고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하려는 바이다.
그리고 이런 어린 아이가 나의 삶, 인간관계, 일, 사랑에
훼방 놓지 않도록 그 아이를 잘 달래고 돌봐주려 한다.
그동안이 여정은 그런 아이를 찾아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바깥에 없었고 내 안에 있었다.
마흔이 되어도 내 안의 아이는 뛰어논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나의 모자라고 부끄러운 부분이 아니라
상처가 아니라
나의 창조성을 도와주고 조금 더 순수하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나의 한 단면이다.
내 안에는 무수하게 많은 내가 존재한다.
그런 나를 하나하나 다 정당화하고 옳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아이를 지켜보고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을 하기 위함이다.
고요히 사유하고 나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을 때 나는 안전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