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칠순이 된 엄마.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4년. 이후 초 3때 정읍에서 여름방학 기간 중 며칠간.
중학교 시절에는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로 찾아와서 잠깐.
2000년도 스물셋 일때부터 교류를 해왔지만 함께 살지 않았다.
내 삶 속에 존재한닥 강하게 믿고 있지만 그녀의 현실의 삶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거의 '모른다'가 진실에 가깝다.
내가 존재하기 이전에 삼십년의 삶 속에 그녀의 출생 유년, 소녀, 사춘기, 청년이 존재했을 것이고, 한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고나서 '딸'이라는 존재를 만났을 터.
그녀가 나를 만나고 겪었던 어려움과 힘듦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이후 나 역시 그 그림자의 영향에 있었던 6년여의 시간.
이후 도서관은 내게 그림자 바깥의 다른 여러 그림자 속으로 여행하는 시간이었다.
그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있고 나서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성처럼 마치 책을 읽듯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생각해 놓은 책에 그녀의 삶을 가져오기 십상이었다.
온전한 이해란 무엇인가.
그녀 주변의 누군가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모르던 이야기들이 결합될 때 온전해 짐을 느낀다.
올해 여름 다리를 다쳐 입원한 엄마의 수술 대기실에서
엄마와 20년을 넘게 한 집에서 산 새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재혼을 결심했던 이유.
재혼 이후의 삶. 그속에서 반복되는 패턴.
어떤 특정한 습관이나 감정적 반응이 반복 될 때 삶의 무늬가 된다.
그리고 그 무늬를 통해서 그 사람의 독특함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삶에서 엄마를 이해하려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느끼는 어려움을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에 대해 적어볼 것을 생각하게 된다.
2018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