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움을 키운다는 것

지구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첫 단추

by 로사 권민희

9시 58분 쓰기 시작한다.

지난 주 화요일이었나. 인사동 아지오 약속장소에 나갔다. 지난해 50플러스캠퍼스에서 '자아탐색'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들으시고는 명함을 받아간 분이다. 갑자기 내가 생각이 났다며 문자를 보낸 50대 여성. 용기를 내어 연락을 주신 것을 안다. 대부분 강의때 명함을 주고 받지만 선뜻 연락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고 기쁘기도 하고 여러 마음을 안고 찾아갔는데 수화기를 통해 그 장소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며 짜증을 쏟아내고는 나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달라고 한다. 요즘 30일 프로젝트로 너그러움 키우기를 하고 있는 와중이라 내 안의 저항감이 명료하게 느껴졌다. 보고 싶지 않았고 돌아갈까도 잠시 생각했다.


잠시만요, 전화를 끊고 찾아오는 길을 친절하게 지도와 함께 보낸 후 기다리겠다고 했다. 뭔가 수영이 서투른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노라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화로 잘 안내를 했고 그녀가 도착했을 때 또 다시 내게 쏟아진 짜증, 그녀와 마주 앉아 음식을 시키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녀는 화와 불안 사이를 오고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함께 느껴보려고 했다. 어떤 이유든 그녀는 지금 분노의 깊은 물 속에 있었다. 화가 불인가 아니면 물인가.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를 하고 구명조끼를 먼저 입고 입수하여 그녀에게 구명조끼를 건넸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익숙함이라는 깊은 물 속에서 화가 난 채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하려면 구하는 쪽과 빠져나오는 쪽 양쪽의 의지가 더해져야 한다. 오늘 주제를 보면서 그녀가 생각났다. 화에서 빠져 나오지 않는 여성 그리고 모성은 살벌하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스물 셋이었다. 그녀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양의 화를 내게 꺼내었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만남들에 대한 좌절감이 나를 무기력하고 슬프게 했다. 표현되지 않은 슬픔은 화의 씨앗이 되었다.


나는 다른 곳에서 화를 꺼내곤 했다. 종로에서 뺨맞고 을지로에서 화내는 식. 컨베이어벨트 위에 있는 듯 화와 슬픔이 대량 생산되었고, 내가 바라는 나는 '평화롭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바람과 현실의 간극은 커져만 갔다. 나를 사랑하기가 어려웠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했다. 하지만 불쏘시개처럼 불길 가득한 마음에서 재가 되어버렸다.


행운은 아무 것도 없어지면서부터 찾아왔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존중이 무엇인지 관계가 무엇인지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서 생물학적 나이는 마흔이 되었지만 마음의 주름이 많이 펴졌다. 화에 대해 쓰면서 느끼는 이 일체감이 대단하다. 화는 동일시가 쉬운 감정 중 하나인듯하다. 마음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나 역시 살벌함을 풍겼으리라. 인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는 바로 여기서 부터다. 스스로 너그러움을 훈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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