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엄마와 함께@24시간

by 로사 권민희


아침 여덟 시까지 군포역에 도착하려면 홍제동 집에서 6시 반에 출발해야 한다. 엄마는 물류창고에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일찍 가야 한다고 나를 종용했고, 나는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왜 보러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좋은 마음으로 출발했다.
서울역에서 급행을 타려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군포역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27분.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엄마 친구 두 분과 아버지까지 다섯 명이 차에 타야 했다. 원양어선 새우잡이 배 타는 심정으로 차에 올라 내내 옥상정원 고추농사 이야기를 듣다가 슬몃 웃음이 터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아한 철학적 질문이 떠올랐다. 이 70대 어른들이 뿜어내는 삶의 에너지. 그것이 삶이었다. 그 세대에게 고추농사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 나는 그 수다에 동참했고, 그들은 흔쾌히 나를 품어 주었다.


물류 창고에서

1년에 한두 번 오픈된다기에 찾아갔는데 직원 4명이 헹거에 옷을 걸어두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첫 방문자였나보다. 옷 종류 20여 종이 걸려있었다. 살짝 두려움이 올라왔다. 거대한 물류창고 안 7층 작은 방.

그 풍경에 1차 실망했지만 내가 옷을 입는 족족 엄마들이 저거 나도 살래 하면서 경탄을 해주니 신이 났다.

가격은 모두 1~3만 원대. 수십 배의 가격이던 그 옷들은 종수는 작지만 알찼다. 거의 모든 종을 박스에 담아 앞으로 10년은 입고 선물하고 할 듯이 옷을 담았다. 수완이 있다면 떼다 팔고 싶더라.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친 일행은 굴요리 집에 가서 돌솥밥을 뜨끈하게 먹고 만족스럽게 헤어졌다. 우리가 느낀 오전의 일체감은 종교적인 느낌마져 들었다. 호산나!


교외 한적한 의문의 장소
이후 엄마와 외조부모님과 오빠의 위패가 모셔진 절에 찾아갔다. 금빛 가득한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았다.

다양한 크기의 금빛 부조물을 수백~수천만원에 사서 그곳에 진열한 생경한 종교의 현장을 이렇게 보다니. 그곳은 골드밸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비즈니스의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엄마의 세계는 넓었다. 나에게 사업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알려주시려는 듯.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참았던 눈물이 났다. 툇마루에 앉아 눈물 콧물 다 내놓고 나니 개운했다
어제 오늘 날씨는 너무 좋았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41년 전에도 이렇게 좋았던 날이었겠지.


함께 자던 밤
돌아와 고춧가루를 빻고 들기름을 짜러 방앗간에 갔다. 엄마의 마흔다섯 새아버지의 50대를 알게 된 장소. 80대의 춘천댁 할머니는 아직도 두 사람을 청년이라고 얘기했다.
저녁엔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웠는데 감자 구운 것과 잘 숙성된 김장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도 매우 만족하셨다.
엄마와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려 했는데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잠들었다. 엄마의 침대는 묘하게 이완이 된다. 중간에 깨지도 않았다.
아침엔 어김없이 옥상에 올라가 고추를 돌보고, 오늘은 욕실 바닥 공사가 있어 일하는 분들이 오기 전에 아침 먹고 청소한다고 6시부터 나를 깨웠다. 엄마의 일상을 오롯이 느끼는 아침이다.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탔다. 1호선엔 사람이 많다. 곧 신도림역 환승을 앞두고 있는데 약간 부담된다. 그러나 늘 그렇듯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게 환승했다.


2019 가을은
아빠의 투병 이후 8월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았다. 22일 PET로 상세하게 검사를 하고 8월 27일 결과를 가지고 앞으로를 조율 할 예정이다. 우리의 가을은 참 애뜻하겠다.

한편으론 두 사람은 병까지 닮았는데 왜 함께 8년밖에 살지 못했을까 싶다. 8월 첫주에는 엄마가 아빠 병원에 찾아와 대화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손을 잡는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그 낯선 풍경.

잠시 나도 입을 떼어 할 말을 전했다. 두 분에게 나를 태어나게 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말을 배우고 한 번도 두 분을 앞에 두고 하지 못했던 말.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숨쉬기가 부담스럽게 마음이 차오르는 8월 내 생일. 두 사람을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연결된 이들을 느껴본다.
Happy birthday Together


생일 선물로 받은 숲사진 묶음. 곧 이런 숲을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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