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읽는 시 45
사람
오은
이 사람아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우리는 길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교복을 벗고 만났다
서로의 이름을 잊은 채
어딘가 낯이 익고
익숙한 냄새가 나고
사람임은 분명해서
너는 쫙 편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이름 대신
손금이 구불구불했다
어떤 길을 따라가도 순탄할 것 같았다
눈이 있는 사람
사람 보는 눈이 있던 사람
재물선이 선명해서
나는 네가 큰사람이 될 줄 알았지
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손금이 목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
사람 좋은 사람
잘못을 해도 쉽게 인정해서
나는 네가 새사람이 될 줄 알았지
손금 하나를 무작정 따라갔다
갈림길에 섰다
등을 댈 것이냐 돌릴 것이냐
내가 뱉었던
네가 들었던
모진 말이
등줄기로 흘렀다
어딘가 귀에 익고
친근한 말맛이 나고
억양마저 확실해서
나는 쫙 편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양 볼이 뜨거워서
손금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손바닥을 맞추곤 하던 사람이
가차 없이 손바닥을 뒤집어버리듯
등을 돌리고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벌써 가면 어떡해!
사람이 사람을 불렀다
방금 전까지는
사람이었던 사람을
이 사람을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