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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Oct 25. 2022

제주 체류 148일째 _ 중간 정산 _ 음식편

맛집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음식에는 문화와 자연과 환경이 깃들어 있다. 신비의 섬에 도착한 첫날 5월 30일 친구 K의 외가 장례식이 제주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제주의 장례식은 독특한 문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일포'라는 문화다. 장례 때 문상객이 오는 시간대가 별도 존재한다는 것. 발인도 고인에게 좋은 날짜를 봐서 정한다. 절도 가까운 친척 아니면 하지 않는단다. 운이 좋게 그 시간대에 찾아가 특유의 장례음식인 돼지고기와 마른두부와 떡을 먹을 수 있었다. 흔히 먹던 육개장이 아닌 미역국이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담백하고 자연식에 가까운 제주 장례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 육지도 메뉴의 다양화가 필요해 보인다.

일상식은 큰 차이가 없다. 제주한살림이 활성화되어있어서 노형동 매장과 담을 매장, 이도 매장을 가서 우리 땅에서 난 재료들로 집안의 냉장고를 채웠다. 이곳 한살림은 제주 농산물 코너를 별도 운영한다는 것이 큰 차이. 제철 농산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점심 메뉴는 일하는 곳이 신제주 연동이다 보니 직장인들이 흔히 가는 찌개, 해장국, 백반 등의 메뉴를 선택하는 빈도가 높았다. 콩 생산량이 많은 제주에서 청국장을 직접 담그는 모심 청국장은 장류가 좋다. 이밖에 모퉁이머릿돌, 제주국담, 엉덩물, 민속감자탕, 정겨운수제비, 일품순두부 등이 여러 번 갔던 곳. 그중 엉덩물에서 처음 먹어본 갈칫국이 인상적이었다. 비리지 않고 담백한 맛. 제주 오면 꼭 도전해보면 좋을 메뉴다. 가끔 파스타가 그리울 때는 집 앞 깅코가 유용했고, 길 건너 우리 양에서 숯불에 구운 양고기는 친구들과 함께 가기 좋았다.

제주 관광객들이 꼭 먹는 식재료를 떠올리면 해산물 외에 흑돼지가 아닐까? 서울에서 누군가 오면 돼지고기를 먹곤 해서 생애 돼지고기 섭취량 최고치를 돌파한듯하다. 줄 서서 먹는다는 숙성도나 연돈이 아니어도 제주에서는 고깃집이 대부분 평타 이상인데, 직장인 맛집인 삼무공원흑돼지, 봉하깡통구이, 도도름흑돼지와 한우 등에서 맛있게 먹었다. 유명 관광지 가격 대비 가성비가 좋고 반찬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돼지고기는 구이보다 쌈채소와 나오는 돔베고기를 좋아하는 편. 돔베고기는 마을 잔치 때 어르신들이 만든 게 제일 좋다. 제주는 해장국, 김밥, 국수 가게가 많은데 관광도 그렇지만 알코올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한 몫하는듯하다. 덕분에 제주 여인들 중 하와이안 같은 체형을 종종 본다.

원도심의 탑동은 단연 힙한 맛집 천국이다. 아라리오 뮤지엄 세 개관 인근과 칠성로, 서부두 음식거리, 무근성길 골목골목 삼시 세 끼만 먹는 게 아쉽다. ABC 빵집에서 소금 빵 사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자. 저녁에는 식물원 콘셉트의 와인바 용기 정도 가줘야 인싸. 전통의 동문시장과 칠성로는 맛집 천국이겠지만 내가 주로 갔던 곳은 스시도모다찌와 풀고레 등이다. 풀고레는 제주 전통음식을 모티브로 한 전통주펍. 제주토배기인 주인장이 아주 시원시원하다. 술 안 마시는 나도 이곳의 안주는 아주 좋아 좋아. 로컬스티치에서 진행한 워케이션 프로그램 덕분에 알게 된 끄티탑동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무알콜 음료 먹는 것도 대만족. 여행초보라면 산지물에서 전복뚝배기 먹으면 현지 기분 물씬 난다.

여름 메뉴의 강자는 물회다. 제주 전통 물회는 된장 냉국이라 불리는데 생된장을 풀어 강원도나 육지의 고춧가루식이 아니라 담백하다. 특히 제피라 불리는 제주 식물 잎사귀가 독특한 향미를 더한다. 제주에서 물회를 먹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식탁 위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빙.초.산' 더욱 당당하게 '많이 넣으면 죽을 수 있습니다.' 안내가 친절하게 손글씨로 적혀있다. 한치 철, 자리 철에 물회 한 그릇은 먹은 것이 올여름 최대 도민 코스프레였다. 도민은 물회에 밥 말아먹는 게 국룰이란다. 제주대 인근 보목바다나라 2호점이 가장 전통 제주식에 가깝다고 해서 지인들 여럿 보냈다.

알다시피 서울에 롯데리아처럼 늘어나는 은희네해장국은 상표권이 서울 사람이 만든 곳이다. 제주 은희네는 특허 처리를 못해서 그냥 로컬 브랜드라네. 서울과 맛이 조금 다름 주의. 가장 독특했던 해장국은 제주 고사리를 갈아 넣은 우진해장국인데 도민들은 줄 서서 절대 먹지 않는다. 포장하면 1분 컷이기 때문. 포장해서 인근 용두암에서 바다 보면서 먹는 게 꿀맛. 해장국 맛집은 대부분 아침 일찍 열어서 오후 3시면 닫는다. 이후에도 영업하는 곳은 사업 마인드이므로 알아서 거르시길.

가끔 푸지게 먹고 싶을 때는 일도2동 소드레 한정식으로 가거나 선흘리 작은부엌 채식 식당에 간다. 둘 이상 가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 구경을 한다. 도도름 역시 점심 정식이 1만2천원인데 옥돔구이와 돔베고기 제주식 반찬들이 깔끔하고 푸짐하게 나온다. 제주에서는 옥돔 말고는 다 생선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여왕급 물고기는 옥돔뿐. 왜인지 제주인의 옥돔 사랑은 여전하다. 제주 토배기 사장님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점심 정식이다. 하도리에 가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낭만적 이름의 음식점이 있다. 이곳에서 먹은 전복장 비빔밥도 참 깔끔하고 푸짐했다.

몸을 챙기고 싶을 때는 성산리 시흥 해녀의 집 오분작죽을 추천한다. 오분작은 전복과 다른 아이들인데 예전에는 괄시받았지만 지금은 수확량이 적고, 전복은 양식 종이 많아서 오분작이 귀해졌다고 한다. 겨울 여행할 때 오분작 죽 한 그릇 먹으면 감기가 싹 낫는듯하다. 올여름 동네 아이들 수영스팟을 찾아 한림 포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곽지해수욕장이 참 즐거웠다. 무작정 네비를 보고 고른 애월읍 또뜻부뚜막의 보말죽도 고소하고 맛있다. 어멍이 해주는 음식의 귀함을 느낄 수 있는 곳. 하지만 부엌에 노인 혼자 있어 좀 안쓰럽기도.

카페, 알다시피 제주는 국내 최대 카페 생성지. 각자의 개성과 커피 부심이 대단하다. 커피맛이 좋고 개성 있는 대표적인 곳은 조천의 5L2F. 온 가족이 이주해 중산간에 집을 짓고 최상의 메뉴를 개발했다. 인스타 성지인 커피템플 텐저린 카푸치노는 앞으로도 몇 번 더 맛보고 싶다. 큰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닝겐들을 보며 뭔지 모를 안도를 느낀다. 바다 뷰 카페들은 모두 커피보다는 바다가 열일 중. 김녕 청굴물 카페와 공항 인근 니모메는 한 번쯤 가보면 좋을 것. 태풍 즈음 함덕해수욕장 인근 무거 버거를 갔는데 비바람을 보면서 먹는 버거 맛이 좋았다.

북풍이 불어온다. 게다가 만조. 도두 바당 파도가 거센 아침이었다. 마침 탑동으로 이사를 해서 차로 드라이브를 하고 출근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월요일 아침이 새로웠다. 새로운 기운으로 11월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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