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눈물이 난다
늦은 밤, 아빠가 회사를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빠는 '어라, 내 몸이 왜 이러지' 하고는, 천천히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힘겹게 차 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고집스레 한 걸음씩 내디뎠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이내 휘청 휘청 위태롭게 흔들리기 일쑤였고,
현관문 고지는 넘어섰으나, 결국 아파트의 복도 벽을 마주하고는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했다.
담관암 4기, 그렇게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젊었을 적, 열심히 회사를 다니던, 그 과거의 어느 시간 속을 혼자만 훌쩍 머물다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젊고 건강했던 과거에 머물다 다시 현재의 암환자로 돌아오는 시간여행을 반복했다.
길어야 2주일 것 같다고,
어젯밤 에피소드를 말하는 나에게 가정 호스피스 간호사가 말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섬망 증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리고 다른 신체적인 증상이 함께 올 때,
경험 상 2주 정라고 했다. 호스피스를 바로 알아보라고 했다.
곧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하루 종일 잠을 잤고,
맥박이 약해 숫자로 안 잡히는 때가 종종 있었고,
밥을 먹지 못했고,
진통제 알약을 삼키지 못했으며,
무호흡 시간이 길어지고,
그렁그렁한 가래소리가 났다.
짜증과 호통이 늘어났고,
복수가 차 배가 나오기 시작했고,
화장실까지의 걸음도 힘겨워했고,
며칠 째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와의 마지막 여행지가 호스피스가 될 줄 알았으면,
그랬다면, 알았다면, 진작에 더 잘했을 텐데. 정말 잘했을 텐데.
호스피스로 옮긴 지 일주일 되던 새벽,
가늘게 이어지던 아빠의 숨이, 멈췄다.
무호흡처럼 보이더라도 곧 다시 이어지던 숨이,
이번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숨결이 사라졌다.
숨이 멈춘다는 게, 숨결이 사라진다는 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 전의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고, 벌써 일 년.
멈춰있을 것 같은 시간이 벌써, 사계절을 지나, 그때 그 자리에 되돌아와 서 있다.
기억은 차츰 희미해지는데,
아직도 나는 회사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