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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제정된 장애등급제는 장애를 의학적 기준에 따라 1등급에서 6등급까지 나눠 차등적으로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제도였지만, 2019년 7월 1일부터 1~6등급의 장애등급을 폐지하고 장애정도에 따라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하기로 변경되었다.
이는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만들어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더 세밀하게 고려해 서비스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기본 상식이라오~"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로의 전환은 장애계의 오랜 요구사항을 수용하여 31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장애인 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장애인의 욕구·환경을 고려하는 수요자 중심으로 대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보건복지부는 설명하였다.
장애인, 부끄러운 것이 아닌 우리와 같은 존엄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사람과 상의한 끝에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기로 하고 예약을 걸어두는 등 갑자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대학병원 교수님들과 장애라는 것에 대해 상의하고 조언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적은 있지만 우리 아이의 장애등급 판정을 위해 병원을 찾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내내 무겁더라.
그전에 보건소와 특수교육청을 다니며 갑자기의 행동관찰 등을 통해 발달장애에 대한 결과 값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집사람은 바쁜 날 대신해, 늘 항상 고생했다.
병원으로 향하는데 집사람의 뒷모습이 짠하게 보이더라.
나와 집사람은 병원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병원 교수님의 말을 아주 집중해서 잘 들었다.
물론 병원도 한 번만 간 게 아닌 여러분 내원하며 갑자기의 장애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보호자님, 두 가지의 유형으로 장애를 등록할 수 있어요."
담당교수님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자폐장애가 있고요, 지적장애가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것이 좋으시겠어요?"
내가 복지시설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둘 중 갑자기에게 도움(?)이 될 장애명을 선택해야 했다.
차이는 교육지원과 일상생활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훗날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근무하는 장애인복지시설에도 갑자기와 같은 장애인들이 지내고 있는데, 가끔 보호자(부모)들과 상담을 할 때면 10이면 10, 이렇게 말씀들을 하신다.
"우리 아이보다 딱 3일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요."
"왜죠?"
"우리 아이 3일장은 해줘야 하잖아요. 그런 다음 저는..."
"......"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때의 그 철없던 이해가 아닌 완전한 공감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드디어 갑자기가 정식으로 법정 장애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들을 모두 꿈나라로 보내고 집사람과 단 둘이 거실에 앉았다.
텔레비전 음향만 가득한 거실, 잡음은 있으나 적막에 가까운 분위기였고 내가 집사람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 지?"
"뭐가?"
"오늘 갑자기 병원 다녀온 거."
"새삼스럽게..."
강한 여자, 그래서 내가 더욱 사랑하는 여자. 바로 내 여자.

"너만 괜찮다면..."
"오빠는 어때?"
솔직히 힘들지만, 받아들여야 했고 내가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강한 여자인 집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 담대하게 대답했다.
"자기야, 어쩌면 우리는 다른 발달장애인 보호자들보다 축복 일런지 몰라."
"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장애인복지 쪽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고 이런 일을 매일 같이 겪고 있잖아."
"......"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준비된 부모일지도 몰라. 앞으로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발달장애인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자."
"응."
다 내 잘못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잘 못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이 든다.
자괴감... 뭐 그런 것도 같고 나 때문에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눈물 흘리고 있을 내 여자, 강한 여자 집사람에게 정말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