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나자 교생 선생님이 출몰하셨고, 시끌벅적 요란한 체육대회와 몇 개의 교내 행사가 휘몰아치듯 지나고 나니 다시 기말고사를 준비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녀석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교생 선생님과 정이 담뿍 들어 헤어지는 날에 드린다며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습니다. 어버이날도 어물쩍 넘어간 녀석이 저리 밤을 새워 종이학을 접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바늘구멍 만해진 엄마의 마음엔 괘씸함이 슬금슬금 들어찹니다.
체육대회가 있던 날 아침, 계주 선수로 뽑힌 둘째 녀석이 양말을 한 개 더 챙깁니다. 신발을 벗고 달리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저는 더러워진 양말은 제발 버리고 오라고, 절대 그 상태로 신발 신고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아이는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잠들어버렸습니다. 모로 누워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딸아이 발에는 새카매진 양말이 떡하니 신겨져 있네요.
어둑해질 즈음 잠에서 깬 딸아이에게 체육대회에 대해 물으니 계주는 꼴등, 줄다리기는 옆반한테 져서 결승 진출이 무산됐다고 했습니다. 대신 응원전만큼은 1등을 했다며, 응원단 맨 앞줄에 서서 격렬한 춤사위를 보여준 영상을 자랑스럽게 제 눈앞에 들이밉니다. 응원 리더를 뽑는 기간 동안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중이던 딸아이는 춤 영상을 찍어 온라인으로 보냈답니다. 춤과는 1도 안 친할 것 같은 평소 이미지와 달리 대단한 반전 댄스를 선보인 딸아이는 친구들의 투표로 응원단 맨앞줄에 서게 되었지요.
딸아이가 며칠에 걸쳐 접은 종이학을 가져가던 날, 교생 선생님들은 손 메모를 적어붙인 색 도화지를선물하셨습니다. 돌돌 말린 색 도화지를 펼쳐서 자세히 읽어보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딸아이가 체육대회 날 꺼이꺼이 울었다는 것을... 계주에서 꼴등을 한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아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그래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것을 말이죠.
몰라봤습니다. 남의 눈 의식하느라 큰 소리로 얘기도 못하게 하고, 수줍음이 많아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도 낯선 거리 한복판에서 길을 묻지 못했던 딸아이가 큰 소리로 목청껏 울어 젖힐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요. 딸아이는 자신의 세계에 집을 짓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때론 바람에 흔들리고, 폭우에 무너져 다시 지어 올려야 하는 집일지라도 자기 마음에 드는, 자기 색깔의 집을 말이죠.
자녀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큰 착각이라는 것을 둘째 아이는 또 이렇게 제게 일러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