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에 감자탕?
사춘기 딸아이는 다 계획이 있군요
오늘따라 토요일 아침이 분주합니다. 9시 반까지 학원에 가야 하는 큰 아이의 아침밥을 차리느라 제 손과 발이 무척 바빴죠. 평소 같으면 작은 아이는 꿈꾸고 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친구를 만난다며 깨우지 않았는데도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말리고, 한껏 멋을 부리고는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자신의 모습을 체크합니다. 큰 아이도 그런 동생이 걸리적거리는지 저리 좀 비켜보라며 하나뿐인 전신 거울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요즘 작은 아이가 부쩍 외모에 열을 올립니다. 식사량을 조절해서(절대 운동은 하지 않습니다) 살을 빼고, 없던 앞머리를 내고, 더운 여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닙니다. 엄마 말에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는 것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한참이 흘러도 감은 눈을 뜨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에 사춘기는 참 좋은 핑계가 됩니다.
아이들은 방학을 무척 기다리고, 반기지만 엄마는 걱정을 넘어 두렵습니다. 삼시 세끼 잘 차려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은 사춘기 아이와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잘 지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혹여라도 싫은 소리 나오지 않도록 입단속, 등짝 스매싱 날리지 않도록 몸단속 해야합니다. 사춘기라, 사춘기여서, 사춘기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괜찮은 척... 참고 지켜봐야 하는 방학의 또 다른 말이 '엄마 개학'인 이유입니다.
어제는 작은 아이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길래 기특해하며 들여다보았습니다. 모니터 반쪽은 유튜브 검색창이, 나머지 반쪽에는 한글 파일이 열려 있었죠. 엄마처럼 유튜브로 공부하면서, 뭔가를 메모하려고 준비하나 싶어 물으니 내일 친구랑 노래방에 가서 부를 노래를 고르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What????
아침 10시에 만나서 친구와 감자탕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흠~ 예사롭지 않은 메뉴야)
그리고 노래방에서 네 시간 노래를 부를 거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두 시간이라며?)
코인 노래방 대신 시간제 노래방을 선택한 이유를 솰라솰라 귀에 꽂히게 읊습니다. (나름 논리적이야)
그런데 노래방 리스트는 왜 만들까?라는 물음에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노래를 고르느라 놓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잖아.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한 사람은 쉬어줘야 노래를 오~~~래 부를 수 있거든. 이렇게 번갈아가며 노래를 부르려고 친구가 부르고 싶다는 노래 목록을 받았어. 이제 내 노래 목록이랑 번갈아 배치하고, 간간이 뜌엣 쏭도 넣어서 리스트를 작성하면 네 시간 동안 다 부를 수 있을 거야." (헐~~~)
네가 그렇게까지 계획적이고, 치밀한 아이인 줄 미처 몰랐구나. 엄마랑 시험 계획 세울 때랑은 무척 다른 모습이네?????
필요한 비용까지 꼼꼼하게 계산해서 당당히 용돈을 요구하길래 삼천 원을 더 얹어 주었습니다.
10시가 되기 전 나간 아이가 5시가 넘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엄마, 노래 다 못 불렀어" 말하고는 삼천 원을 식탁 위에 올려놓네요.
딸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