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이 있다. 나는 어떤것도 좋아지않고 어떤것도 싫어하지 않았다. 좋아하는것도, 싫어하는것도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나한테 그렇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때면 그 사람을 속으로 손절하고 잊어버리고 만다.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넌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고 나는 반쯤은 자랑스럽게, 박애주의자라도 된 마냥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라고 말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좋은게 좋은거라는 나의 태도가, 이제는 누구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인지적 게으름 때문이라는걸 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왜 내가 이렇게 무늬없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나의 성격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나는 예민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눈치를 많이 본다. 내가 예민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불편해 하는 것도 극도로 불편해한다. 예전에는 내가 착한 사람이어서 그런줄 알았다.
내가 착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용인하지 못하는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공감성 불편함을 크게 느끼는 사람인것이다. 내가 착한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이 불편한걸 보는게 불편하니까 나를 위해서 남이 불편한 상황을 싫어하는거다. 착한게 아니라 예민한거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은 극도로 무던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예민함을 숨기려 무던함을 연기하는거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같이 있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내 자신을 희생한다. 기꺼이 분위기 메이커가 되고, 싸움이 일어나면 열정적인 중재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온갖 에너지를 다 빼앗긴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데만 몰두 해 내가 뭘 원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내 자신도 당췌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남의 기분을 맞추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서, 여행도 즐겁지 않고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면 다음날은 하루종일 누워서 HP를 회복해야 하는 날들이 지속된다. 과거형처럼 들릴 수 있으나, 지금도 그렇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어떤것도 좋아하지 않고, 어떤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할려고 쓴 글인데, 글의 요지는 내가 이런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기 떄문에 내 마음이 동하는 무언가에 집중할 기력이 없다는 것이다. (변명인가?)
어릴적에는 호불호 없는 인간으로 자라는게 덕목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냥 특색없는 회색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소중히 느끼고자 하고 있다. 요즘은 내가 조금이라도 애정하는것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왜 그게 좋은지 애정을 집중시키려 노력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