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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곡예사 Mar 01. 2022

그런 날이 있었어요

희로애락_애 : 안 하던 걸 그날만 했는데

평소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거나 항상 곁에 두고 있지 않은가? 배터리가 다 되어, 핸드폰이 꺼질세라 콘센트만 보면 충전기를 꽂거나 보조 배터리를 꺼내 연결하지 않는가? 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핸드폰을 잘 꺼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핸드폰을 꺼둬야 했다. 인적성 검사를 해야 했기에. 정확히는 꺼둔 건 아니고 비행기 모드를 해뒀다. 오랜만에 시험지 같은 종이를 받아들고, 뇌에 솜털이 있다면 그 솜털이 다 빠질 정도로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다. 너무 오랜만에 경험한 시간제한 문제 풀이, 답안지 체크라 느낌이 강렬해 그 장소를 나오자마자 지인들에게 이 경험을 한껏 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적성 검사장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비행기 모드를 풀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그간 쌓인 알림을 봤다. 아빠에게 부재중 전화가 왔고, 평소에 먼저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동생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 톡을 보면 전화하라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동생에게 전화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자신이 지금 맥주 한 잔을 마셔서 당장 운전을 못 해, 저녁 7시는 되어야 집에 도착할 것 같으니 그때까지 집에 오라고 한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지금 먼저 시골에 내려가는 중이니 동생이랑 만나서 동생 차를 타고 함께 내려오라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정신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동생과 아빠, 엄마의 말이 다르다. 엄마와 통화를 했을 때 엄마가 횡설수설 말해서 엄마가 잘못 말했을 거로 생각해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가 엄마 말이 맞다고 한다. 막 돌아가셨다고 한다. 막 인적성 검사를 했던 소감은 잊고 울었다. 지하철에서 눈물과 콧물이 마스크를 흠뻑 적실 정도로 울었다.


집에 오자마자 씻었다. 눈물과 콧물로 온몸을 절인 기분이었기에. 약간의 짐을 싸고, 멍하니 앉아 동생을 기다렸다. 창밖은 깜깜해지고, 동생이 왔다. 동생이 짐을 챙기자마자 바로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동생과 나는 서로 평소와 달리 행동한 오늘의 행동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거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내는 사람인데, 오랜만에 비행기 모드를 한 오늘, 그 잠깐의 시간 사이에 연락이 왔다고 이야기했다. 동생은 캠핑장에 가서 텐트를 치고, 평소에 마시지 않는 맥주를,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딱 두세 모금을 마셨는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동생도 평소에 하지 않은 것을  그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날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인적성 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과 나올 ,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시간과 멍하니 앉아 동생을 기다리던 시간, 동생과 차를 타고 달리던  어두운 도로와 주고받은 이야기,  안의 분위기까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선명한 기억에 자박자박 물이 차오를 정도로 슬픔이 들어 감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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