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면 나부터 마을의 시작점 되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같은 여행지라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제각각이듯이 시작부터 환경이 내 마음속의 풍경처럼 딱 떨어진다면 불평 없이 다들 행복할 것 같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욕심의 시작은 뿌리는 같은 듯해도 전혀 다른 줄기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환경이 맞으면 인간관계가 안 맞을 때도 있고 인간관계가 좋은데 환경이 안 맞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인간관계, 환경)부터 바뀌어있기를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것이다.
모든 관계는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느끼고 또 그게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진해지는 요즘이다.
가드닝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사를 온 후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 전 도시에서 만들어뒀던 인연들도 다 끊겼고 또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사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40줄에 들어선 사람이다. 이제 예전 10대, 20대처럼 그저 들이대며 친해져야 하는 나이가 아니고 그래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우선 집과 친해지기로 마음을 먹고 내가 사는 공간부터 사랑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 집과 마트, 병원, 여러 기관들이 어떻게 연결이 돼있는지 살펴봤다. 분명히 장단점이 있다.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선명하고 또 장점도 선명했다. 그런데 공간이라는 것도 나의 모습과 닮았다. 내 모습에서도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고 드러내기 좋은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게 내 모습이기에 장점도 너무 드러낼 필요도 단점도 너무 숨기려 할 필요 없이 조금 모른 척 넘어가며 나를 받아들인다. 그렇듯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적당한 시선을 주고 사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가드닝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하엽지는 나뭇잎을 보면 바로바로 잘라주고 부지런을 떨었지만 이제는 적당히 지켜보기도 하고 잎사귀만 마르는 건지 가지 전체가 뭉치로 마르는 건지 지켜본 다음 가지치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적당히 보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우선 나의 드러냄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특정 이익을 위한 의도나 계획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적어도 목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려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입고 나가는 옷도 내 정체성에 가장 맞는 스타일로 골라 입고 메이크업의 정도도 스스로 조절을 했다. 나는 일정 시간을 두고 집에서 하는 일, 집안일에 대한 시간 계획이 있고 주간으로도 일정 계획이 있는 편이다. 그렇게 계획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계속 마주쳐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이랑 맞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또 나랑 취향이 맞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너무 집요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웃을 여럿 사귀게 되었다. 아침 시간에는 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저녁에만 놀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있다.
때로는 아이의 할머니일 때도 있고 아이의 외할머니가 될 때도 있다. 아버지가 있을 때도 있고 이제 막 일 마치고 온 워킹맘도 있다. 각각의 이웃들은 서로 이름은 몰라도 그 순간, 연대를 갖는다.
나는 그 정도의 연대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아이를 키우기 좋은 여건이라고 생각이 든다.
요즘 매체에서는 극단적으로 아이 친구 엄마랑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너무 친해지려 할 필요 없다고도 하지만 결국 우린 호모사피엔스 아닌가? 뭐든 극단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다. 우린 고립되게 살 수도 없고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사회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가끔 다른 인종 같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집요하게 부담스럽게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에서 인사하고 가까이 있게 되면 친하게 흠뻑 어울렸다가 또 헤어질 때는 편하게 헤어지는 관계면 적당한 것 같다. 그렇게 얕지만 두루두루 넓게 인연을 사귀어두면 그것이 서로의 울타리가 되고 또 마을 공동체의 장점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온라인을 통해 글을 많이 읽고 쓰고 강연도 많이 챙겨보는 사람이지만 온라인 밖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 요즘이다. 자신이 상처받을 것을 생각해 자신을 너무 외롭게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 또한 어릴 적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었고 그게 성인이 될 때까지 영향을 주는 트라우마이긴 했다. 그렇지만 나는 허공에서 사는 게 아닌 이곳에 발붙여 살고 있다. 이곳에서 먼저 살아내야 하고 또 더불어 살아야 길게 갈 수 있다. 관계의 경중 보다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잘하면 그 관계는 충분히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늘 곁에서 새로 잎을 내고 지는 화초들처럼 잔잔히 눈 마주치면 웃지만 또 지나치면 아쉬워할 것도 없이 잔잔한 이웃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나부터 그런 이웃이 돼야겠다는 마음을 내어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찌 보면 천진해 보이는 친절함이 나약함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지만 친절함이 더 속이 단단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끼리 만나게 되어있다. 내실 있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