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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치유하는 힘

내가 나에게 진실된다는 것은?

by 미니작업실

오늘날, 삶은 복잡하고 희로애락은 매번 우리를 찾아온다. 그때마다 누군가에게 찾아가 매번 도와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범하고 시간이 있는 일상을 보낼 때마다 자신을 치유하고 보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뜻깊은 선행이다.

자신에게 들러붙은 집착이 무엇인지, 무엇이 고질적으로 아파서 누군가가 하는 특정 말이나 행동만 보면 나 스스로 화가 나고 자꾸 그 말이 걸리는지, 그 사건만 나타나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버리는지는 자신만이 알고 있다.


우리 집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우환이라던가, 나 자신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결핍감에 대해서 주도권을 남에게 다 넘겨줘서야 고치는 지경에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나를 바라보겠다는 용기와 결심이 중요하다.


정보가 다양해지고 어떤 것이 나에게 유용한 것인지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 올곧게 서있는 나 자신은 사실 판단 할 수 있다. 모두들 나는 모른다고 하지만 진정한 나는 내가 어떤 판단을 하는 게 나에게 더 유리한지 그다음 어떤 루트로 내가 더 성장할지 이미 계획하고 있고 그렇게 성장해 나간다.

나는 없고 나는 모른다고 하는 것은 결과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명의 나는 모른다는 것이고 결과는 내맡길 만큼 내 운명에 믿음을 가진다는 뜻이다. 내 운명에 믿음을 가진 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낙관한다는 말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진정한 나 자신은 나라고 집착하는 포장지의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더 잘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흐름을 막는 것은 사실 작은 나 자신이다.

내가 좀 더 밝은 눈으로 현실을 볼 수 있는데 불안이 많아 자꾸 세상이 무섭고 신경증이 섞인 눈으로 밖을 보게 된다. 그렇게 겁먹은 의식으로는 누군가를 대할 때도 항상 겁을 먹고 있고 항상 실수하지 않을까 곤두서 있다.


그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당연히 공감하면서 슬퍼하는 것은 좋은데 자신이 그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더 우울한 감정에 매몰돼 버리는 경우, 그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나는 슬픔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내 속에 슬픈 수많은 감정을 내보내야 한다고 알리고 있는 것이다.

현상 너머에 진짜로 내가 수용받고 싶은 감정을 알아야 한다.

그럴 때면 남들에게 그런 감정을 조를 필요도 없거니와 외로움에 지쳐 아무에게나 가서 하소연하거나 술 먹고 이성이 마비 돼서야 겨우 토하게 되는 나를 굳이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작게 만들고 내가 뭔가 하려고 할 때 자꾸 발목을 잡는지 남들은 몰라도 자신만은 알아야 한다.


그 마음을 진정으로 잘 헤아려 듣고 잘 살펴봐줄 때 진정한 어른이 된다.

어린 시절의 수많은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새해가 됐으니 뭔가를 해보자고.

그런데 그것이 정말 어른이 된 내가 하는 소리인지.

그 시절의 내가 이제는 내 소원을 들어달라는 소리인지 내가 먼저 들어야 한다.


꿈과 자잘한 목표들,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어 찾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 목소리, 내 가슴속에 묻어둔 수많은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목소리 이전에 수많은 아쉬움에 눈물이 터진다면 너무 멋진 발견이 된다.

이제는 그 마음의 소리를 스스로 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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