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기 전 한 달 남짓 남았다. 이 집, 이 공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몰려온다.
더 행복하게 지낼걸, 더 많이 닦고 귀하게 대해줄걸.
청승맞은 심정과는 다르게 바깥풍경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그 다채로움에 쓸쓸함을 달랠 수 있었다.
봄만큼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있다. 단풍도 여기저기 가득 물들고 바닥에 수북한 은행잎이며 각각의 색으로 물든 잎사귀들이 널브러진다. 정말 한 끗 차이로 나무에 붙은 나뭇잎은 같은 빨강이라도 반짝거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같은 빨강이라도 빛이 바래는 게 느껴졌다. 한해 제 몫을 다한 나뭇잎은 담담하게 떨어진다. 찬바람이 불면서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보는 사람만 애처롭게 감정에 이름을 붙여본다.
학교를 다니거나 뭔가를 하지는 않아서 한 해가 더 쌓인다고 해서 나 자신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나의 변화 보다 주변의 변화에 더 집중하게 된다. 10월은 가을이 설레었지만 11월은 어째 단풍이 진해진 만큼 헛헛한 마음도 든다. 연말이 되면 가족 행사, 연중행사도 많아지고 기쁨과 설렘도 같이 기다리는 것 같다. 그렇게 기쁨을 쫓아서인지 잠시 기다리는 시간들이 사실은 짧은 순간인데 그 간극이 꽤나 먼 시간처럼 멀게 느껴진다.
마치 캠프파이어의 온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곳에서의 추억을 더듬어봤다. 인간관계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성장통이 있었지만 이 또한 없어질 감정일 것이다. 또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뭘 남기고 버릴 것인지 더 더 냉정하게 돌아보게 됐다. 예전에는 다이어리나 플래너를 구입했겠지만 이제는 그날그날 충실히 사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아이가 올해 학교를 들어갔다. 작년의 11월은 아직 학부형이 안된 불안과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이 목표, 학원과 학원 숙제에 대한 적응 등등이 항상 예의 주시하게 했다.
그런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갔고 지금은 제법 여유 있게 2학년을 맞이하고 있다.
딸: "엄마~ 난 내가 빨리 크는 게 싫어~"
나: "왜? 빨리 크면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잖아~?"
딸: "내가 크면 엄마는 나이가 들잖아~. 나이가 계속 들면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그러면 죽잖아. 난 그게 싫어~"
지금보다 어릴 때 책을 읽으면 동화에서는 '사라진다.'라고 얘기하거나 '하늘로 올라갔다.', '명을 다했다.' '운명했다. ' 등등 죽음을 돌려 말한 부분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그 진짜 의미를 궁금해했었다.
사전적인 의미로서 죽음을 말했을 때 아이는 감정적으로 많이 울었다. 그 뒤로 동화책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쏟아, 그 뒤로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죽음 근처의 단어는 질문하지 못하게 했다. 궁금한 게 많아서 내게 질문을 해도 좀 더 커서 이해할 수 있을 나이가 됐을 때 대답해 주겠다고 하고 침묵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글을 배우더니 조금씩 의미를 배운 것 같다. 그리고 이젠 울지 않고 담담하게 대화하게 됐다.
내년에는 또 이맘때의 불안과 설렘을 곱씹어볼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성장을 돌아보게 되길 또 심적으로도 여유 있는 연말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