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부모님들은 자식을 사랑한다.
그래서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경제적으로도 안전한 바운더리를 조성한다. 그렇게 이 아이가 사회인으로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사회적 태도도 같이 가르친다. 이때 아이의 사회성 교육이 수위 조절과 이해가 엉키면 '조건부 사랑'으로 잘못 기억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조건부 사랑으로 가르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아이의 발달 및 성장에 고려하지 않은 억압, 조종은 자꾸만 아이가 눈치를 많이 보고 우열을 끊임없이 가르는 내적 심판자, 조종자를 만들게 된다. 이때 사회성을 키우면서도 유난히 고쳐지지 않고 혹은 도드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개성, '자기 다움'이다.
사회성이란 말을 의미적인 해석으로 써보면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위해 타인과 소통하는 과정을 배우고 적절히 자기 다움을 펼쳐내는 노력, 더불어 미움받지 않는 최소한의 경계를 배우는 과정이다. 사회성에는 자기 자신으로 발산해야 하는 면과 움츠리고 참아야 하는 경계가 있다. 자기 다움이 온전히 자신이 드러나야 할 공간에서는 100프로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을 드러내길 바란다. 그만큼 남들의 경계도 알아차릴 수 있다. 자기 다움을 드러냄과 움츠러듦 사이에 미움받지 않는 방어적인 에너지에 더 쏠릴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부정적으로 움츠리게만 하는 게 아니다. 이런 태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바로 자유의지 보다 공동체의 의미가 소중할 때이다. 다 같이 먹는 야외 식당, 축제, 결혼식처럼 주인공이 모두이거나 따로 정해진 자리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주목받으려 애써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시시때때로 자신이 홀로 있는 시간에 온전히 마음 놓고 있어야 할 곳에 계속 공공장소에서 할 법한 신경을 쓰고 의식해 눈치 보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건 어린 시절 해석 오류로 잘못 학습된 태도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부분은 '학습된 태도'이지 '타고난 기질'이 아닌 것이다. 어른이 된 내가 충분히 다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회성의 또 다른 말은 자신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을 갖는 것이다. 이때 앞서 반복적으로 얘기한 대로 자기감정에 귀 기울이고 감정과 함께 있는 연습을 해왔다면 사회성을 연습할 때 활용할 수 있다.
내가 기쁠 때 언제 기뻐하고 내가 유난히 화가 난다면 언제 화가 올라오는지 알아차려보자.
기쁨의 카테고리
크고 작은 노력과 그에 합당한 성취를 이뤄냈을 때
크고 작은 물건을 샀을 때
금전적으로 이익을 볼 때
친구관계가 돈독할 때
가족과 화목하게 지낼 때
etc (이때 나에게만 느껴지는 소소한 것도 좋다. )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비릿한 기쁨을 느끼는 자신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친구가 잘 못 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뭔가 실수를 했을 때, 남을 비하하면서 기쁠 경우'는 자기가 진짜 기뻐서 웃는지 주위에 질 나쁜 어른으로부터 잘못 학습된 웃음인지 알아봐야 한다.
화의 카테고리
학벌 얘기를 할 때
돈 번 얘기를 할 때
특정 가족을 얘기할 때
가난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몸에 대한 얘기를 할 때
etc (이때 나에게만 있는 일명 '발작 버튼'이 있다. 꼭 알아채자!)
이때 내가 감정으로부터 요동칠 때는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고 그 공간에서 나와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몸반응부터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고 그 감정을 받아줄 준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모습은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 나오는 오은영 선생님이 항상 얘기하는 훈육방법이다. 부모님부터 감정을 다스려서 아이를 천천히 지켜보며 나은 방향으로 고쳐가는 과정과 같다.
그 과정을 어른이 된 내가 아이였던 나에게 알려주면 된다. 누구나 몰라서 힘든 구석이 있다. 자책하지 말고 고칠 점을 발견해 낼 때마다 칭찬을 해주자. 이때 나은 행동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면 다양한 모범사례를 찾아보자. 유난히 따뜻한 가족관계를 보여주는 작가님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런 분들의 글 속에서도 부족한 사랑의 결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비교 문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그렇게 잘못 새겨진 열등감, 우월감이 대를 이어 다양한 언어로 비언어적 방법으로 표현된다. 웃었지만 뒤돌아 보면 씁쓸했던 모든 감정을 알아차려주자. 모든 억울한 포인트는 '다 웃자고 하는 소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렇게 다양한 감정의 접점을 솔직하게 담아 그림을 그려보자. 카페나 집에서 혹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려도 좋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집중해 보자. 화려하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오롯이 지켜봐 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연필로 옮겨보자.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인연, 새로운 경험이 영감이 되듯이 우리에게는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림으로 한번 표현해 보자. 커다란 감정에 한껏 진지해 있다가도 나의 드로잉을 보면 그 감정에 매몰된 생각에서 금방 빠져나 오게 된다.
‘아니 힘들게 감성 카페를 찾아왔는데 이런 어린애 수준의 그림을 그리다니?’그런 분별심도 올라온다. 그래도 생각이 만든 감정수렁에 모르고 빠지는 것보다 좋다. 오히려 감정을 이용해 창작으로 계속 전환하는 연습을 하자. 감정이 올라오면 연필을 들고 그리자! 어느 순간 생각으로 파고드는 나쁜 습관을 놓아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명화를 보면 항상 번영과 즐거움만을 그린게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뭉크의 ‘절규’는 어떤가. 또 반대로 자신이 늘 예술은 슬프고 애통한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면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찾아보자. 얼마나 가볍고 편안한 그림이 있는지 말이다.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감정에 다른 결의 감정도 초대하자.
괴로움에서 쥐어짜듯 그린 그림이 감정의 안전한 표출방법이라면 나중에 다시 한번 다듬고 고쳐나가는 과정도 그려도 좋다. 이때 승화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글이글 화나는 감정이 있다면 감정을 해소하는 용도로 다양한 재료로 자유로운 '백드롭 페인팅'도 도움이 된다. 화가 많은 사람들은 말랑말랑한 '천사 점토'를 이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해 보자.
좀 더 그릴 여유가 있다면 먹으로 드로잉을 해봐도 좋다. 먹의 번짐으로도 충분히 고요함에 집중할 수 있고 칠하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이기에 스트레스 완화는 물론 현재에 집중하는 힘 또한 키울 수 있다. 또 점점 감정을 읽어주다 보면 자기도 몰랐던 숨겨둔 소망도 발견하게 된다. 자신만의 비전을 그림에 담아 표현할 수 도 있다. 모든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보자. 그렇게 시작된 좋은 생각, 과거의 좋았던 추억도 드로잉 북에 기록해 두자. 작은 하얀 드로잉 북에서 한 뼘만 더 크고 넓게 자기 다움을 찾아보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드로잉 밖에서 드러나고 있는 자기 다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