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속도에 자책만 하는 당신에게

파트1 - 목표 / 방향성 / 추진력

by 미니작업실

고전에서부터 요즘 나오는 양서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길'을 가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만의 목표와 방향성을 가지면 추진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추진력과 방향성을 잡고 끈기 있게 해 나가는 과정 또한 양육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기질에 맞춰 부모님이 세심하게 관심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 준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탐구가 시작된다.


또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하려는 주장이 강해서 우선 행동하게 두는 게 좋은 양육이 될 수도 있고 조심성이 많은 친구들은 부모님이 방법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나아가야 맞는 성향의 아이도 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응원해 주고 웃고 같이 울어주고 격려해 주는 과정을 아이는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10대 때도 마찬가지이다. 호기심이 생겨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어린 시절과 같이 응원해 주고 점점 더 할 수 있는 마음길을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호기심을 향해 추진력과 방향성을 잡게 된다. 이걸 요즘 말로 '자기주도학습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시도를 하고 경험을 거쳐 자신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경우는 부모님의 방향성이 강한 경우이다. 아이가 뭔가 할 때마다 부모의 기질, 교육의 방향성과 반대되는 것에 집중력을 발휘할 때 저지당한다. 이때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도 크고 작게 작용한다는 것도 집중해야 할 포인트다. 우리나라는 공부를 잘해야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니 공부에 대한 방향을 의도적으로 잡아주게 된다. 그 외의 다양한 관심과 능력은 아이가 어느 정도 발언권이 생기며 클 때까지 경험조차 못한 불모지가 된다.


이렇게 양육 과정에서 다양한 호기심에 대해 격려받고 지지받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 계발'을 믿지 못한다. 아니 자기 계발을 할 때마다 좌절하게 된다. 왜냐면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혀 먹어보지 못한 외국 과일을 이용해 요리해먹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내어 시작해도 과정에서 끈기 있게 자신이 응원받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프라인 미니작업실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만난 귀여운 초등학생 2학년 친구가 있었다. 밝고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였다. 첫날 화지에 자신을 소개하는 그림을 그리게 시켰다. 그때 이 아이가 아무것도 못 그리고 있었다. 생각이 안 나면 네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캐릭터, 좋아하는 음식 등등 을 그려도 좋다고 했다. 아이들 제각각 신나게 그려나가고 있을 때, 그 아이만 멈춰있었다. 그때 들은 말이 충격적이어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선생님~! 근데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색?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


나는 눈치껏 혹시 엄마나 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자 줄줄줄 얘기했다.







모두 자기가 속한 집단의 룰을 지키며 그 안에서 살기 때문에 그 세상이 전부인지 아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술교육 분야 안에서도 입시미술교육에도 있었고 아동미술교육도 일해봤지만 그림을 이뤄내야 하는 속도가 달랐다. 당연히 입시미술에는 빠른 성격이 맞았고 아동미술에는 느긋한 성격이 맞았다.


직장 외에 자신의 관계집단도 둘러보자. 그리고 어떤 성향의 사람이 많은지 살펴보자. 주위에 성실한 사람이 많은가 아니면 여유 있는 사람이 많은가. 자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면 성실함이 인정받는 관계집단에 들어가야 한다. 또 자신이 쫓기는 것 같고 늘 급하게 달리는 기분이 든다면 한 템포 여유 있는 집단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 개인적인 성향으로 일을 빨리 끝내야 마음이 편한 사람, 일을 천천히 꼼꼼히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일(혹은 목표) 처리 속도가 '강아지, 치타, 햄스터, 말, 거북이, 토끼'처럼 태생부터 다른 몸의 구조, 다양한 속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때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자. 주변이 나에게 압박한 것도 아니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목표를 수행할 때마다 조급해진다면 당신의 보이지 않는 ‘불안,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를 한번 찾아봐야 한다.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 무엇인가에 쫓겨 급한 마음은 공포, 불안을 회피하는 마음기제이다. 우리는 살면서 작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불안이 나의 인생의 주된 감정에너지가 된다면 이 얘기는 달라진다. 어린 시절 일을 수행할때, 자기가 생각했던 속도보다 매번 지적받고 쫓기고 혼났던 기억이 있으면 어린 시절의 억눌린 마음이 남아 '수행과제=부모의 명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당연히 자기 계발에서 변화를 요구하거나 과제가 주어지면 '귀찮음'으로 도망가거나 가슴 두근거림과 함께 너무 싫지만 빨리 해치워버리고 만다. 즉, 과정에서 얻어지는 행위의 목적은 사라지고 '빨리 해낸' 시간적 단축만 기억된다.


당신의 행동 주체, 즉 감정에너지는 ‘안정감’이 되어야 한다. 안정감은 가만히 멈춰있는 게 아니라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일렁일렁 움직이는 감정의 곡선을 얘기한다. 바다가 깊고 넓어질수록 아주 고요한 파도만 있을 뿐 그리 심한 파도는 드물다. 그러나 불안을 기제로 산다면 얕은 수심에 크고 작은 돌들을 만난 파도처럼 거칠어진다. 어린 시절 작은 시도, 작은 실수에 참 많이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면 자신의 부모님의 양육 언어와 태도를 한번 돌아보자. 자신이 자라 오면서 작은 시도의 발걸음이 움직여질 때마다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았는지, 응원을 해주셨는지 되돌아보자.


나는 지난 14년간 학생들을 위해 학생, 부모님 입시상담을 했고 또 지금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확장해 이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확실히 부모님과의 상호작용이 한 사람의 인생에 참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다. 오죽하면 ‘한 번에 착 착~!’이런 광고가 참 인기가 많다. 소중한 시간을 아껴준다는 의미지만 다른 포인트로 노련하게 하는 ‘한 번에’의 의미를 참 좋아한다. 우리나라 말에 삼세 번은 해보라는 말대로 세 번까지는 봐주지만 그 이상 서툴게 굴면 확실히 소질이 없고 의지가 없는 사람이 된다. 차라리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이 혼이 난다.


나 역시도 빠르게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속이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이유 없는 '다그치는 마음과 조급함’을 알아채게 된다. 당신이 회사에서 후배를 만나거나 노인이나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 자신의 마음 속도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황마다의 제 속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뛸 때는 뛰고 걸어도 되는 상황에서는 걷는다. 매사 신중하고 계획적이고 때론 직관적이어도 급하지 않다. 그저 신나게 그 상황을 즐긴다. 기본적으로 여유 있다.



앞서 말한 ‘속도, 일에 대한 완성도’를 숙련된 사회적 능력과 헷갈리면 안 된다. 시간 약속에 대한 철저함은 부정적인 태도의 조급함이 아니라 신용의 자세로 해석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일에 대해 꼼꼼히 검수하는 태도도 날이 갈수록 노련해지는데 이때 노련해지는 촘촘함은 집중력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것은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태도를 가진 자신에게 칭찬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부정적인 다그침, 조급함은 자신까지도 불편한 속도에 대한 얘기다. 남을 돕기 위한 선의로 포장된 ‘조급한 마음’이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아직도 뭔가 부족하고 뭘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늘 자책한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내가 어떤 무리 속에 있는지 주위 사람을 먼저 살펴보는 게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정말 내가 그런 모습인지 알 수 있다. 만약 주위 사람들이 무기력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긍정적인 추진력을 ‘욕심’으로 엉뚱하게 얘기할 것이다. 더불어 잔소리를 엄청 할 것이다. 심지어 말리려고 할 것이다. 뛰지 못하게! 더 도약하지 못하게!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잘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만 있는데 자신만 급하게 굴고 있다면 자신의‘불안함’의 근본, 즉 가족으로부터 대물림된 ‘불안함’을 천천히 대면해 봐야 한다. 그 가족은 또 누구로부터 그런 부당한 괴롭힘을 받았는지 기억해야 한다. 이쯤 되면 알 것이다.

그 주된 원인 제공자가 누군지. 그렇다면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내 감정을 그 누구보다 깊은 마음으로 공감해 보자. 복수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대상을 알고 어떤 말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감정을 그대로 떠올리기가 어렵다면 산책을 하면서 그 답답함을 알아주자. 이런 감정을 그리는 게 싫다면 낙서로 표현해도 좋다. 그런 한숨을 스크레치로 그려봐도 좋다. 이런 감정을 멋지게 잘 그리려고 했는데 웃기게 그려졌다면 그 또한 성공이다. 무거울 것 같은 생각이 의외로 나의 코웃음 한방에 날아간다. 진실은 이렇게 가볍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탈출하면 남은 감정을 가지고 승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갚으려는 게 아니다. 나의 치부, 나의 부족한 부분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는 것일 뿐이다.


모든 해답은 포기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건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을 충분히 하신 분일 것이다. 다양한 삶의 굴곡이 있겠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자신을 이끌고 싶어 하는 기본 마음이 단단한 분들이다. 자신을 기본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다면 이런 글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스스로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 저절로 나의 호기심은 살아나고 추진력이 생기며 방향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남들의 베스트가 아니라 나의 베스트버전을 향해 오늘도 조금씩 자신에게 맞게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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