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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작업실 May 14. 2024

꽃, 흙, 물, 바람, 볕, 새소리

같은 빛깔의 관계

꽃을 따라 닿아있는 흙

흙을 촉촉하게 하는 물

물을 잘 말려주는 바람

그 모든 걸 시작하게 하는 햇볕

이름은 달라도 같은 빛깔



꽃만 바라보다가 줄줄이 따라오는 식구들처럼 한 세트로 관심을 넓혀준다.

식물을 키울 때 집안에 인테리어로서의 기능만 생각하다가 점점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자각이 생길 때 비로소 식집사가 되는 관점이 생기는 것 같다. 처음부터 욕심으로 꽃을 많이 피우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건강할 때는 몰랐다가 꽃이 지면서 잠시 힘이 약할 때 병이 들기 시작했다. 꽃대가 짓무르고 전체적으로 힘이 없었다. 조금 발견한 진딧물을 보고 설마 이 정도로 죽기야 하겠나 했지만 돌아서니 진딧물이 점점 많아졌고 시들다가 결국 잎사귀까지 다 말라버려 죽어갔다. 작은 화초이지만 살려내고 싶어서 알아봤던 비료의 종류, 살충제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다가 점점 옆 식물들의 흙은 안전한지 수분은 적절한지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처음 멋모르고 심었던 흙의 상태도 다시 점검해 봤다. 수분을 잘 머금는 흙인지 통기성이 잘되는 흙인지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 집의 빛의 양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했고 빛이 많이 필요한 아이, 빛이 적당히 필요한 아이, 일정시간 어둠이 필요한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햇볕이 충분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화분에 흙을 채우는 법도 자세히 알아보고 바꿔주기 시작했다. 이때 우리 집에 맞는 화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보기에만 예쁜 화분인지 식물에게 도움이 되는 화분인지 알아갔다.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으로 뿌리가 썩는 경우와 애초에 화초 자체가 약했던 경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알아갔다는 것은 그만큼 실패했던 것도 많았다. 일부 식물은 죽기 전에 더 살기 좋은 친정집 화단으로 입양 보낸 것들도 많다. 또 어떤 식물들은 처음 뿌리랑 엉켜있는 흙에서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어서 씻어내고 다시 심어둔 화분도 있었다.


그렇게 화초와 연관된 수많은 '관계'를 돌본 후에야 옆의 다른 화초들은 원래 자기 생장점을 찾은 듯 제대로 잎사귀에 초록이 짙어지고 가지 사이로 잎사귀를 새로 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화분들도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이제야 드디어 물만 줘도 잘 사는 사이클을 잡게 되었다.




화초를 하나 살리고자 했던 과정을 보자면 우리의 하루하루 살아냄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냄은 여러모로 많은 관계로 가능한것이다. 또한 생명력 있게 살고자 하는 행동은 절대로 욕심가득하거나 이기적인 게 아니다. 나 하나 행복해지자면 나와 연결된 수많은 관계를 돌보지 않을 수 없다. 저절로 자신을 포함한 이타적인 관계에 눈을 뜨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수없는 실패와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나와의 관계는 점점 익어갈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고요하다.


그 고요함을 뚫고 새가 지저귄다.

햇볕이 창가를 스쳐 온 집안 가득 들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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