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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히 Jan 11. 2018

어느 회사에나 또라이는 있다

우리회사 또라이의 최후

몇 달 전, 어느 회사에나 있을법한 좋은 선임과 나쁜 선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좋은 선임 vs 나쁜 선임) 사실 그 글을 쓸 당시만 해도 그렇다. 내가 다니는 이 회사에도 그 다양한 똘끼를 보유한 선임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리고 그 글 말미에 나쁜 선임이 신입 사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코멘트를 남긴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신입 사원 또한 또라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입사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말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직기간이 길었던 편에 속한다. 그 사람의 앞 뒤로 더 짧게 다닌 친구들이 훨씬 많다. (평균 3개월~5개월 내외). 

이번 글에서는 어느 회사에나 있을법한 짜치는 또라이가 쫓겨나게(?)된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또라이로 고통받고 있는 몇몇의 직장인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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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선임, 이름하야 '우똘(우리회사 또라이)'

각설하고, 또라이 선임이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내가 이 회사를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2년 반쯤...?) 결과적으로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잘 버틴 덕에 또라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가능성을 가진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속이 조금 후련하다고나 할까?


어느 회사에나 있다는 또라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멘탈을 손쉽게 부셔버리는 무서운 존재들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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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우똘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우치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또라이들은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의 또라이 (줄여서 우똘)는 회사를 다니는 내내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들려줌으로써 신입사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게끔 일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떠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일련의 일들은 우똘 자신의 선택으로 발발한 일은 아니었다. 명분은 외부에서 우똘을 훅 치고 들어갔다. 


명분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재직했던 지난 2년 반 동안 나도 나름대로의 고충을 갖고 있었다. 사소하게는 사무실 청소나 회피하는 전화 대신 받기부터 바쁜 와중에 일 떠안기, 굳이 나한테 안 보여줘도 되는 일인데도 일일이 자리로 불러제끼기 등등 작지만 짜치는 사소한 것들이 꽤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겹겹이 쌓여 결국 내 업무에 지장을 주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짜증 나는 상황이 자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쟤(우똘)는 원래부터가 저런 사람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그냥저냥 지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불만을 밖으로 이야기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사원들의 패기는 남달랐다. 


신입사원들은 내가 겪는 짜증남보다도 더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었다. 신입사원이 한 명일 때에는 나름 화기애애하게 시작했지만, 신입사원이 두 명이 되면 우똘은 그때부터 저격을 시작했다. 일부러 의도를 갖고 둘 중 한 명을 심하게 구박했던 것이다. 경력직도 아닌 신입으로 뽑아놓은 직원을, 그것도 제대로 된 업무는 해본 적도 없는 직원이 일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실수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우똘은 비교대상에서 열위에 있는 신입직원에게 정신적 대미지를 주는 언어폭력을 자주 행사했다. 본인은 그게 언어폭력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옆에서 듣고 있는 나까지 심기가 불편해질 정도로 그 농도가 짙었다. 뿐만 아니라 굳이 저렇게 혼낼 필요조차도 없는 상황인데도 혼내는 경우가 많았고, 자기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신입직원들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신입사원들은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우똘의 윗선과의 면담 자리에서 우똘이 얼마나 일을 못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얼마나 일을 못하는지, 사람 관리를 못하는지, 책임 회피를 하는지 등 그동안 우리 회사를 떠난 직원들은 하나같이 우똘에게 굉장한 적대감을 갖고 그녀가 무능력함을 부장님을 비롯한 대표님에게 알려왔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회사의 간부들도 지쳤던 것이다. 회사가 설립된 지 7년 여가 다 되어가는 데 그동안 나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이 열이면 열 모두 우똘때문에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댔으니 간부들도 충분히 우똘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 내가 폭탄을 던진 것이다.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던 내가, 웬만하여서는 불만 없이 일 처리를 해오던 내가, 상상 이상의 긴 장문의 글을 대표에게 보낸 것이다. 그동안 힘들도 불편한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를 계속 다닌 이유, 내가 이 회사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 애사심을 가지고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음을 이실직고했다. 그리고 그것이 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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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은 우똘

마침내 우똘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겉으로는 자진퇴사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달랐다. 회사가 던진 메시지는 하나였다. 변해야 한다. 하지만 우똘은 이 메시지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이유로 자기가 내쳐지는 것이라 여기며 퇴사의 압박이라 떠들고 다니기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회사에 남겨질 나를 걱정하듯 '내가 했던 일들을 인수받아하려니 힘들겠어요.'라는 말을 매일같이 해댔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1도 없었다. 이미 우똘이 하던 일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방법만 알면 누가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퇴사 날짜가 결정되고, 회사는 우똘에게 그 어떤 새로운 일도 시키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본인이 PM으로서 진행해 오던 프로젝트만 잘 마무리해서 나가길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우똘은 이마저도 힘들어했다. 퇴사 날짜까지 받아놓은 마당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에 격하게 분노하곤 했다. 퇴사 날짜를 정해 놓은 사람은 매일매일 칼퇴근에, 업무 인수인계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똘의 말이 비상식적이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 아니라, 재직 기간 중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자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가라는 것인데도 그마저도 싫어하는 모습을 보며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퇴사 날짜는 다가왔고, 우똘은 커다란 상자 두 개에 온 짐을 다 실어놓고 유유히 퇴사했다. 본인의 짐은 퀵을 부를 테니 보내달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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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 돌이 빠진 자리를 메꿔야 하는 남은 사람들

그렇게 우똘이 회사를 떠나고 한 결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 시작됐다. 종료된 지 6개월이 넘는 프로젝트의 정산 오류 문제부터 그동안 한 번도 정리한 적 없었던 회사 내부 자료 보관 사물함, 아무렇게나 쓰이던 회사 공용 서식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서랍을 열면 해 묵은 자료들이 정리나 취합되지 않고 각자 따로 놀고 있었고, 이를 정리하는데 2,3일의 시간을 써야 했다. 우똘의 컴퓨터에 들어있던 자료들은 공유폴더로 옮기고, 정리하고, 삭제되어야 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태가 난다고 했던가, 떠난 자리를 치워야 함에 불현듯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일들을 조금 더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한 과정이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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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돌아다닌다

그렇게 우똘이 떠난 지 약 2주가 지났다. 아직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프로젝트로 인해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온다. 우똘은 떠났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똘은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고 한다. 평소에 자신한테 관심 갖고 있던 회사 대표가 있었다며, 그곳으로 출근하기로 했다고 한다. 좋게 보면 잘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회사 대표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표면적으로 몇 개 프로젝트만 가지고 알고 지내던 사이와, 직장 동료가 되어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개념이고 느낌이다. 그동안 내가 그리고 우리 회사가 겪어왔던 우똘이라면 그 회사에 가서도 적잖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고 하던데, 자신의 무엇이 문제인지도,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과연 회사를 옮긴다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점이 참 무섭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문제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개인도, 회사도, 사회도 조금씩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쪼록 이 우똘이 옮겨간 회사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회사가 아니길 바라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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