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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08. 2017

[D+6] 리스본, 1일권의 굴레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스물 네 시간의 자유, 스물 네 시간의 굴레 - 고래군


어제 꽤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밤 함께 마신 럼 때문일까? 어쨌든 오늘은 평소보다 더 힘겹게 침대로부터 탈출해야만 했다. 사실 다른 날 같으면 좀 더 늦잠을 잘 수도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어제 끊은 하루 교통권을 더 알차게 사용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씻고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그러고 보면 한정된 시간 동안의 자유는, 어쩌면 그 한계 자체로 인해 족쇄이기도 한 것 같다. 스물 네 시간 안에서는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지만, 그 ‘스물 네 시간’이라는 한계 자체가 우리에게 굴레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오늘 길을 나선 목적지는 리스본 외곽에 위치한 어떤 아울렛Outlet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지하철을 타고 끝까지 가거나, 버스를 타고 내려서 삼십 분 정도 걸어가거나 하면 된단다. (구글맵님의 가르침이라나?)


“오빠! 우리 트램 타자!”

“28번? 사람 안 많으려나?”


 어제 흘려보낸 것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올라탄 트램에는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녀와 나는 중간 즈음에 나란히 섰다. 28번 트램이 나에게 들려주는 낡은 나무 재질의 차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창문 바깥으로 흘러가는 구시가지의 풍경을 바라본다. 트램이 흔들리면 나도 흔들린다. 그런데 문득 그녀가 나를 톡톡 치며 부른다.


“왜요?”

“뒤에 여자애가 갑자기 나한테 자꾸 붙어.”


 찡그린 표정으로 뒤쪽을 고갯짓하며 그녀가 말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까만 썬글래스를 낀 어떤 여자애가 그녀 쪽으로 바짝 붙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쟤 아까 저 뒤편에 있던 애인데?


“남는 공간도 많은데 왜 저런대?”

“몰라. 소매치기 많다던데, 불안하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잠시 쭈뼛거리던 와중에, 트램의 뒤편 내리는 출구 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공간이 생겼다. 그것을 본 그녀가 나를 이끌고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쨌든 여행자는 언제나 ‘이방인’이기도 하니까, 스스로 먼저 조심할 수밖에….






#2. 근대도시 리스본 - 고래군


 날씨도 맑고, 도시도 구경할 겸 우리는 일단 버스를 타기로 했다.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곳은 스트라다 아울렛Strada Outlet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도시 외곽에 있다고 한다. 조금 헤매고 나서야 정거장을 찾을 수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736번 버스에 올라탔다.


 사실 버스를 선택한 것은 나의 의견 때문이었다. 그녀와 내가 이 도시를 경험하는 것은 거의 항상 관광객들이 찾는 공간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 도시의 다른 모습, 정말 이 도시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간이 궁금했다. 마치 거의 모든 삶을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이 본질적으로 종로나 명동, 또는 경복궁 등과 만나는 접점의 면적이 넓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아침 침대에서 나를 붙잡던 피곤함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방심하는 사이 나는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문득 누군가가 스쳐지나가며 나를 건드리는 느낌에,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깨어난 것을 보면 말이다.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가만히 바라보며 짓는 그녀의 미소다. 낯선 곳에서 나를 보살피듯 지켜보는 그녀의 익숙한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고 잠들 뻔 했다. 애써 졸음을 바닥에 털어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지나가는 풍경은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리스본의 모습과는 다소 달랐다. 유럽 어딘가에서 만났던 근대적 도시의 풍경 한가운데를 버스가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알파마Alfama의 오래된 골목과 떼주 강Rio Tejo이 구성하는 풍경 역시 리스본의 단면이겠지만, 어쨌든 이 도시의 삶과 시간은 지금 내게 보이는 저러한 근대적 도시 공간에 대부분 담겨있는 것이 조금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는 왜 이러한 풍경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관광지로서의 리스본이 제공하는 환상을, 그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리스본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치기 어린 착각과 환상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냉소 말이다. 뭐 어쩌면 그런 심리도 조금은 섞여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도시가 좋아졌고, 그리고 여전히 이 도시가 좋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어쩌면 나는 나중에 이 도시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그녀와 내가 향하는 곳 역시 이 도시의 일상적 삶에 포함된 한 조각일 것이다.








#3. 낯선 곳에 찾아가기 위한 몸부림 - 미니양


 아울렛을 가기로 한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고래군은 마트쇼핑 말고는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 사실 이 아울렛이 명품아울렛이었으면 애초에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구글에서 찾아본 이 아울렛에는 우리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브랜드들이 많았고, 포르투갈 그릇인 비스타 알레그레 그릇을 싸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 외곽으로 나가 내가 보지 못했던 리스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까지 더해져 갑자기 가고 싶어졌다.


 꼬메르시우에서 736번 버스를 타고 예전 숙소가 있던 깜포 그란데를 지나가는 길, 옛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며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혼자 들떠 옆에서 졸고있는 고래군을 깨워 억지로 옛 기억들을 공유했다. 버스는 계속 달려  Senhor Roubado역에 내렸다. 그런데! 우리가 내린 곳은 메트로역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아울렛으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은 봤으나, 걸어가도 되나 싶은 고속도로 같은 길들.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메트로로 한 정거장 더 가서 Odivelas역에 가기로 했다. 아울렛 홈페이지에 뭔가 셔틀버스 같은게 있다고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울렛 홈페이지는 포르투갈어로만 되어있었다;;)


 정 안되면 다시 돌아가면 되니까 하는 생각으로 Odivelas역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어렵지 않게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Odivelas라는 동네 마을버스 같은 느낌의 셔틀버스를 타고, 동네 버스투어를 하듯 구석구석을 돌아 아울렛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울렛 찾아가는 방법은 조만간 따로 정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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