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못다한 D+17 이야기, 오리엔테의 세 가지 매력 - 고래군
그러고 보니 어제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바로 리스본 오리엔테Oriente이다.
세투발을 뒤로 하고 우리가 바스쿠 다 가마 다리(정말 길고 긴 다리였다.)를 건너 리스본 오리엔테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금요일의 태양은 서쪽 지평선까지 먼 길을 남겨둔 시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마드리드를 떠나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내린 곳도 바로 여기, 오리엔테 터미널이었다. 그 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아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남은 하루를 버리기에는 파란 하늘이 너무 아쉬웠던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대신 테주 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오리엔테 터미널 옆에 붙어있는 쇼핑몰(바스쿠 다 가마 센터Centro Vasco da Gama)에 잠시 들러 한 숨 돌린 우리는, 이윽고 쇼핑몰을 벗어나 강을 따라 펼쳐진 넓은 길로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한 건축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빠. 이거 때문에 내가 여기 오자고 했어.”
“이게 뭔데?”
“파빌리온이라고 부르던데?”
포르투갈의 파빌리온Pavilhão de Portugal이라는 이름의 이 근대적 건축물은 옷감을 길게 늘어트린 형태의 지붕을 두 개의 건물을 기둥으로 삼아 지탱하고 있는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약간의 경사를 가진 곡선으로 하늘과 땅을 분리하면서, 그 내부에 테주 강의 전경을 오려내어 담는 틀frame의 형태를 고려한 디자인이 분명해 보였다. 만약 근대성을 자연을 이성의 범주 안에 담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면, 이 건축물은 그러한 믿음에 대한 신앙적 고백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오리엔테의 첫 번째 매력이 터미널 건물, 그리고 두 번째 매력이 '포르투갈의 파빌리온'이라면, 세 번째 매력은 바로 강을 따라 길고 넓게 펼쳐진 산책길과 그 곳의 사람들, 그리고 테주 강 그 자체일 것이다.
#2. 토요일의 여유로움 - 미니양
전 날 세투발에 다녀오느라 꽤나 피곤했으니, 오늘은 게으른 토요일을 보내기로 했다. 옷은 최대한 편안하게 입고, 떼주 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는 한없이 좋기만 하고, 이 곳 사람들도 그런 날씨를 즐기기 위해 강변에 많이 나와있었다. 바다와 같은 떼주강을 바라보며, 햇살을 맞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이대로 잠들어도 좋겠다 싶어 난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오빠! 나 바닥에 누울래!"
"여기? 그래. 누워. 담요라도 챙겨왔으면 좋았을텐데..."
"아니, 괜찮아. 오빠도 누울래?"
"아니야."
"그래, 그럼"
강하지만 따갑지는 않은 햇살 아래 한참을 누워서 하늘 한 번, 떼주 강 한 번 쳐다보고 있자니, 문득 이렇게 있을 수 있는 내가 좋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서 멍하게 있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다.
#3. 리스본의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고래군
어제의 테주 강Rio Tejo이 오리엔테 근처였다면, 오늘 우리가 만나는 테주 강은 꼬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에서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é 사이의 아름다운 길 위의 그것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더욱 많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바닥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처럼 말이다.
다시 일어나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타임아웃 마켓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의 잔디밭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도 하늘을 마주하고 땅바닥에 누워보았다.
기분이 참 좋다. 눈을 뜨면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그 너머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 다시 눈을 감으면 세상을 흘러가는 바람 소리와 구름 소리, 어쩌면 봄의 소리. 아마 리스본의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나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