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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pr 14. 2017

[D+25] 리스본, 축구에 빠진 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호날두 보러 가자! - 미니양


 며칠 전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웹서핑이나 하며 소파에 누워있다가 눈에 들어온 기사 하나. 포르투갈 축구대표팀이 헝가리와의 월드컵 유럽예선을 리스본에서 치른다는 기사였다. 날짜는 우리가 리스본에 있는 3월 25일! 나는 신이 나서 고래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오빠! 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경기를 리스본에서 한대."

"응?"

"헝가리랑 월드컵 예선을 하는데, 25일이래. 보러갈래?"

"음... 아니야."


 내가 축구를 보러 가자고 하면 신나서 가보자고 할 줄 알았던 고래군의 반응이 시원치않다. 아무래도 내가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왜?"

"저번에 축구 보고 왔는데, 뭘. 그냥 동네 PUB에서 보자요."

"그래? 그럼 오빤 그렇게 봐. 나 혼자 축구장 가서 볼게."

"으응?"


 사실 나는 포르투갈 축구선수라고 하면 저번에 고래군이 말했듯이 호날두랑 페페 정도 밖에 모른다. 감독으로는 무리뉴 감독. 사실 저번에 축구장에 갔을 때는 아는 선수가 1명도 없었으니, 그냥 축구장 가본다는 느낌으로 갔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는 호날두랑 페페도 뛰게 된다고 하니,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내가 축구를 예매한다고 하니, 고래군 말로는 그럼 보러가자며 못 이기는 척 동의했지만 표정은 이미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포르투갈 축구협회에 회원으로 가입까지 하고 순식간에 1등석으로 예매를 했다. 그래봤자, 1인당 25유로. 제일 싼 자리와 금액차이도 별로 안나고, 기왕 보는 거 눈 앞에서 호날두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축구장에서 TV로만 보던 호날두가 뛰는 모습을 봤다. 우리가 보러 가서 잘 뛴 건 아니었겠지만, 호날두는 우리 눈 앞에서 무회전 킥으로 골을 넣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멀리서 보러온 우리에게 선물이라도 해주듯 즐거운 경기를 보여줬다.


역시 축구보러 오길 잘했다!

 






#2. 버스 실종 사건 - 고래군


 승리의 함성을 뒤로 하고, 우리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겼다. 보이는 모든 곳에는 포근한 밤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맥주 한 잔 목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경기장에서 빠져나오니, 우리처럼 조금 일찍 경기장을 나선 사람들이 꽤 많다. 대충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방향을 따라 그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비록 저번에 벤피카SL Benfica의 경기가 있던 날 걸었던 그 길은 아니지만, 어쨌든 길은 이어져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문득 밤하늘로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마치 분무기로 흩뿌리는 것 같다. 이걸 뿌리는 분무기라면, 아마 적어도 오리엔떼 기차역Estação do Oriente만큼 커다란 크기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윽고 우리 앞에 사거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지난번 버스를 탔던 정거장 쪽이다. 흩뿌리는 빗줄기 너머에서 그녀가 내게 말했다.


“오빠, 우리 왼쪽으로 가자. 지도로 봐서는 여기서 그쪽이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아.”

“저번에 탔던 데보다 한 정거장 전이겠네?”


 그래서 도착한 정거장의 이름은 꼴레지오 밀리타르Colégio Militar였다. 아마 이 근처에 무슨 군사 관련 학교 같은 것이 있나 보다. 전광판에는 버스가 대략…… 40분 후에 도착한다고 표시되어 있다. 어라?


“그냥 다시 돌아가서 지하철 타러 갈까?”


 나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윽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싫어. 그럼 집까지 또 올라가야 하잖아. 버스 타면 사파도레스Sapadores까지 한 번에 가는데 뭘.”

“그래요 그럼. 좀 기다리지 뭐.”


 나는 정거장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그녀는 정거장에 붙어있는 버스 시간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빠! 이거 중간에 버스 하나가 빠졌나봐! 원래 10분 후에 한 대 도착해야 하는데! 구글 지도가 알려준 시간표도 그랬단 말이야!”


 우리를 태워야 할 버스가, 아무래도 실종된 모양이다.






#3. 이번에는 버스 납치 사건 - 고래군


 벤치에 함께 앉아있다 보니, 곧 우리와 함께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음이 분명한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까지 삼대(三代)가 함께 보러 온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여자들끼리 보러 온 무리도 보인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을 꼭 붙들고, 목에는 함께 포르투갈 대표팀을 응원하는 머플러를 걸고 우리 앞에서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해서 건너간다.


 하염없이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정거장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사실 좀 꺼려졌던 것이 사실인데, 덕분에 불안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윽고 우리의 건너편 반대방향 도로에서 726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전광판에는 20분 후에 도착이라는 것을 보니, 10분 정도 가서 다시 여기로 되돌아오나 보다.


 자, 이제 10분 남았다. 흰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는 안경 낀 남자 아이 하나가 정거장으로 왔다. 전광판을 보더니,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우리처럼 726번 버스를 타려나 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맥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와인도 좋다. 아무튼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크아! 상상만 하려니 목이 더 타오르는 것 같다. 자, 이제 1분 남았다. 얼른 와라 버스야. 나와 그녀를 그라싸Graça의 우리 집에 데려다 주렴.


갑자기 전광판이 꺼졌다.


 길가에 바짝 붙어 서서 애타게 버스의 모습을 찾기 위해 눈길을 더듬는데, 갑자기 전광판의 숫자 “1”이, 옆에 새겨진 “min”을 남겨둔 채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숫자가 다시 생겼다. “26”이라고 말이다.


“아악!! 오빠! 버스 왜 안 와!!”

“그…… 글쎄? 안 보이는데?”

“버스 왜 안 와! 방금 1분 남았었잖아!”


 이번에는 우리를 태워야 할 버스가, 아무래도 납치된 모양이다.






#4. 이러지마, 버스야 - 미니양


 다시 25분 이상을 기다려야하는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정말 726번 버스는 오지 않는 것인가? 전광판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26분 남았다는 저 전광판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한 3분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우린 결정을 했다. 지하철을 타기로. 40분이나 기다린 상황에서 더 기다리기는 싫었고, 이러다 지하철까지 끊기겠다 싶었다. 다만 원래 축구장 앞 지하철역이 아닌 726번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가기로 했다. 걸어가다 726번을 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먼지같은 바람때문이었다.


 지하철역은 버스정류장으로 두 정거장쯤 걸어가야만 했다. 분무기에서 쏟아내는 물처럼 비는 흩뿌려지고, 우리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는 허탈감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나 식당에나 사람들은 꽤 보였다. 20여분을 걸어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했는데, 이대로 지하철을 타기에는 뭔가 좀 약이 올랐다. 그래서 지하철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버스전광판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버스 전광판은 8분 후를 가르키고 있었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딱 8분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8분 후에도 버스가 증발하면 아무런 미련없이 지하철을 타리라 마음먹었다. 8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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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환한 불빛을 내며 726번 버스가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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