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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Dec 18. 2017

오늘의 달빛처럼_셀축 #2

2014. 터키 ::: 셀축

#1. 저 기둥 하나?- 고래군


 “오빠. 우리 돌아가는 길은 걸어가자.”


 그러고 보니 셀축 시내에서 에페소까지 오는 돌무쉬, 얼마 안 걸렸어. 기껏해야 5분 남짓? 물론 신호 하나 걸리는 일 없이 신나게 달렸으니 아주 가까운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걷기 힘들만큼 멀지는 않았던 것도 같다. 게다가 저런 눈빛일 때의 그녀는 말릴 수 없다. 내가 싫다고 하면 분명 혼자서라도 걸어갈 게 뻔하다.


 혹시라도 배고플까봐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에크멕 샌드위치를 반씩 갈라 손에 든 채로, 우리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페소에서 셀축 시내까지의 이 길, 돌무쉬 타고 올 때는 몰랐는데 꽤나 아름답다. 직접 걸어보니 회화나 영화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교외의 한적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인 것이다. 옛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더위에 조금 지쳤던 몸에 조금씩 활력이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에 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인사를 나눈다. 에크멕 샌드위치는 꽤 맛이 좋다.


 40분 내지는 50분 정도 걸어 셀축 시내에 들어섰다.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산책하는 속도라 그렇지, 바쁘게 걸음을 재촉했다면 30분 정도 걸렸을 거 같다. 시내 바깥을 휘감는 길 옆에 ‘아르테미스’ 어쩌고 하는 작은 표지판이 있다.


“오빠! 저게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인가 봐요!”

“응? 어디? 어디?”

“저기 저거 안 보여 기둥?”


 처음에는 들풀만 가득한 공터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을 유심히 따라가니, 이윽고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돌기둥 하나가 보인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잠시 후 그녀에게 말했다.


“다 봤다. 가자.”

“넵.”

“그런데 정말 저 기둥 하나가 전부인가? 하도 오래 돼서 남아있는 게 저것뿐일 걸까?”

“그러게요. 복원한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왔는데, 아직도 시작 안 된 거라는 말을 언뜻 들었던 것도 같아.”


 저 기둥은 그래도 홀로 그 긴 시간을 잘도 버텨냈구나.






#2. 오늘의 달빛처럼- 고래군


 마땅히 조리할 곳도 없고 해서, 우리는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는 아파트에서 지내느라 만들어 먹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당최 어디 가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종일 걷기도 많이 걸었고, 더위에 조금 지치기도 했기 때문에 일단 이 동네에서 뭔가를 먹을 만한 곳을 검색해보기는 했다. 몇몇 가게들이 나오기는 한데, 사실 별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적당히 배회하며 서로에게 선택을 양보(?)한다.


“오빠! 저기 아까 검색했을 때 나왔던 가게 같은데? 저기 갈래요?”

“응? 당신 가고 싶으면 저기 가자.”

“아니면 다른 데 갈래요?”

“당신 가고 싶은 데로 가자. 다른 데 가고 싶으면 그러고.”

“오빠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난 당신 가는 데 갈게.”

“나도 그런데?”


그렇게 그 가게 주위를 10분 정도 배회했다. 그렇게 방황하고 나서야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딜 들어가도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결정적으로 지금 우리 둘 다 배가 많이 고프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처음 보았던 그 가게로 들어섰다. 물론 이럴 줄 알았다면야 방황할 일도 없었겠지만, 뭐 누군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가게에 앉아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쨌든 여기 들어오기로 한 건 내가 골랐으니까, 메뉴는 당신이 골라!”

“고르라고 해봤자, 나도 처음이라 아무 것도 몰라요. 검색했을 때 나왔던 걸로 그냥 주문하자.”


 식당 안 높은 곳에 거치된 티비에서는 축구가 한창이다. 페네르바체랑, 상대 팀은 어디지? 글씨가 작아서 잘 안 보이네. 비수기는 비수기인가보네. 식당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한적한 걸 보면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 여기 온 게 오늘 아침이었구나 참. 그녀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그 생각을 목소리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밤에 이스탄불에서 떠나서, 이 도시에 오늘 아침에 도착했었지 참.”

“응. 그곳에서 보냈던 날들이 벌써 오랜 옛날처럼 느껴지네.”

“엇!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내일 곧바로 파묵칼레로 가는 거였지?”

“응. 지금 여기 셀축이랑 파묵칼레, 그리고 카파도키아는 숙제 같이 느껴지거든. 최대한 빨리 돌고 나서 남은 기간은 우리 원래 하던 것처럼 느긋하게 돌아다녀요.”


 어느덧 해가 지고 하늘은 캄캄해졌다. 아까 에페소에서 봤던 낮달은 이제 힘껏 빛을 내 세상에 조각조각 흩어놓는다. 우리도 덩달아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 조각들을 빈 테이블 위에 흩어놓고 있노라니, 식당 아저씨가 음식을 담은 접시들을 들고 우리에게로 온다.





#3. 피데 이야기- 미니양 


 뭘 먹어야할지 모르겠지만 많이들 시킨다는 라흐마준과 피데를 주문했다. 피데라... 피자같이 생긴 음식이라고 했다. 대충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렸다. 유명한 식당이라고 하더니, 그 이름 무색할 만큼 손님이 없었다. 손님보다 가게 점원이 더 많았던... 하지만 현지인들이 간간히 음식을 싸가는 모습이 보였다. 고래군은 티비에서 중계해주는 터키리그 축구경기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어찌나 아는 선수와 팀이 많은지 난 겨우 EPL 경기를 따라가기 바쁜데 말이다. 


 잠시 기다린 후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배가 고팠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음식을 우리 위에 공급해야했다. 비주얼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한 조각씩 집어 들었다.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는 순간, 우리 둘은 눈을 마주치며, 눈으로 말했다.


 "이거 맛있잖아!"


유명한 식당이라더니, 역시 뜬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한국에서 먹은 피자보다, 본토라고 했던 이탈리아 피자보다, 시카고에서 먹은 시카고 피자보다 훨씬 더 내 입에 맞았다. 특별한 무언가가 더 들어간 것도 아니었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맛에 그저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평소 식사를 천천히 하기로 유명한 미니고래 커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신없이 피데와 라흐마준을 먹어치웠다. 순식간에 다 먹고 배부른 뿌듯함에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와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했다.


"우리 셀축에서 조금 더 머물까? 이거 한 번 더 먹고 싶은데..."


 순간 정말 그렇게 할까 고민했지만, 아쉬울 때 떠나는 것도 여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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