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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사는 어항
by 미니고래 Jan 06. 2018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빛과 어둠으로 빚어낸 정의


 영국의 정치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다. 작년 9월에 텔루라이드 영화제와 토론토 국제 영화제를 통해 처음 선을  보였던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한국의 스크린에 걸릴 예정이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처음 정식으로 개봉한 것은 작년 11월 미국에서였으며 정작 영국에서는 올해 1월 12일에나 개봉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1940년 5월을 배경으로 영국의 전시내각의 총리로 임명된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Gary Oldman 분)이 겪는 고뇌와 갈등의 서사를 담고 있다. 맞다. 바로 그 윈스턴 처칠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더욱 풍성한 감상을 위해 일단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사람들의 스타일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먼저 영국의 영화감독 조 라이트Joe Wright는 어쩌면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영국 등 유럽 쪽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의 대표작 중 우리에게 꽤 익숙한 작품이 하나 있다. 2005년 독자 또는 관객들의 감성에 울림을 전했던 영화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2005)을 떠올린다면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쓴 안소니 맥카튼Anthony McCarten은 스티븐 호킹의 전기를 다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원제 <The Theory of Everything>, 제임스 마시James Marsh 감독, 2014)의 시나리오 작업을 맡았던 작가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모두 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섬세하고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빛의 두 가지 모습


 영화 <다키스트 아워>의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아마 ‘가장 어두운 시간’ 내지는 ‘절망적인 순간’ 정도가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번역해도 원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그대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인지, 영어 제목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제목이 지시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표현 방식은 바로 ‘빛’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이미지 안에서 빛이 존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빛의 ‘있음’과 ‘없음’이다. 조 라이트 감독은 극 중 인물들의 심리 묘사, 나치 독일과의 분쟁 상황에 대한 절박함의 정도, 그리고 주인공 윈스턴 처칠이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을 통해 그가 처하게 되는 입지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내적 갈등과 클라이막스 등을 표현하는 데 바로 이러한 빛의 두 가지 양상을 대비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독자 또는 관객은 영화적 주체가 어두운 공간에서 좁은 틈을 통해 인물을 바라보는 이미지, 또는 공간 내부에 선택적으로 빛을 조명하는 이미지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기법은 <다키스트 아워>의 서사에 독자 또는 관객들이 깊게 침잠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빛과 암흑이 가지는 보편적인 상징과 은유가 결합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빛과 어둠이 가진 의미들을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복잡한 추론이나 해석 과정이 없이도 서사의 흐름에 쉽사리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빛과 어둠의 대비라는 재료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상징과 은유라는 점은, 그것이 그만큼 흔하고 상투적인 것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점은, 조 라이트 감독이 그것들로 표현하는 스타일은 결코 흔하거나 상투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편안함은, 독자 또는 관객이 온전히 ‘윈스턴 처칠’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준다.



게리 올드만의 놀라운 변신과 연기


 작년 개봉해서 지금도 상영 중인 미국에서는 <다키스트 아워>에 대해 대체로 두 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보인다. 첫 번째는 영화가 시간과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빅 벤Big Ben’으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궁 의회the House of Commons in the Palace of Westminster’나 ‘다우닝 스트리트Downing Street’, ‘버킹검 궁Buckingham Palace’ 등의 공간들을 영화가 어떻게 디자인하고 재현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윈스턴 처칠’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힘이다. 일단 ‘<다키스트 아워>에 진짜 처칠이 나타났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혹시 게리 올드만의 이미지가 잘 안 떠오른다면, 영화 <레옹>의 악당 ‘노먼 스탠스필드’나 영화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제임스 고든’ 경감을 기억해내면 된다. 그만큼 그가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는 ‘처칠’의 이미지는 두 눈을 의심케 만드는 충격적인 변신인 것이다. ‘저 사람이 정말 그 게리 올드만이라고?’와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던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영화에서 ‘처칠’이 보여주는 미세하고도 섬세한 감정의 변화에 대한 표현력, 즉 게리 올드만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가 뒤를 잇는다. 영화는 한결같이 ‘윈스턴 처칠’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그 서사는 주로 총리prime minister로서의 처칠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게리 올드만은 중심 서사의 흐름 속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노인으로서의, 한 시민으로서의, 윈스턴 처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윈스턴 처칠’이라는 개인이 가진 인생의 두께와 깊이로서 표현해내고야 만다. 독자 또는 관객은 약 125분의 시간 동안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게리 올드만에 의해 1940년 런던의 한복판으로 이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열연 덕분에 게리 올드만은 이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통해 2018년 제75회 골든글러브 어워드의 모션 드라마 부문 최고 연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결과는 1월 7일이 되어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보여준 연기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승자 이야기,
또는 정의로운 정치에 대한 호소


 <다키스트 아워>는 한국에서는 ‘역사 영화’로 장르를 구분하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뤘다는 인식 때문인가 보다. 이런 접근방식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전쟁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끄는 단초를 제공한 ‘윈스턴 처칠’을 미화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따지고 보면 어쩌면 ‘윈스턴 처칠’은 그저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정치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신대륙의 거대한 영토와 엄청난 자원,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폭발적인 물량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이 배후에 있지 않았다면 윈스턴 처칠의 정책은 영국 역사에 있어 가장 뼈아픈 순간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비판적 시각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전제로 하는 ‘1940년 5월’이라는 한 페이지를 역사 전체에서 도려내 보여줌으로써, 처칠의 영웅적 이미지를 완성하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 영화를 ‘역사 영화historical drama’로 보는 동시에 ‘전기적 전쟁 영화biographical war drama film’, 그리고 ‘정치 영화political drama film’로도 분류한다. 역사에 관한 영화는,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허구인 것이다. 제발 이 서사들을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온전히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자. 만약 우리가 <다키스트 아워>를 ‘정치 영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서사는 결국 한 사회의 정치는 악惡이나 부정의不正義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교훈Bildung에 대한 서사인 것이다.


사진출처 : http://collider.com/darkest-hour-new-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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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는 그녀와 글쓰는 그의 소소하고 담백한 여행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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