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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Dec 10. 2018

‘코스타노바’의 치명적인 매력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그녀에게 있어 ‘그릇’이란- 고래군


 그녀에게 있어 포르투갈의 그릇이라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의미로 다가가는 듯하다. 하나는 아름다운 컬러와 디자인을 통해 자신이 만들거나 준비한 음식을 완성하는 행위를 위한 장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로는 ‘공간’이 아니라 이미 ‘장소’가 되어버린 포르투갈을, 그곳이 아닌 곳의 일상에도 이식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와 그녀가 좋아하는 포르투갈의 브랜드가 있다. ‘비스타 알레그레Vista Alegre’와 ‘코스타 노바Costa Nova’가 바로 그것이다. ‘비스타 알레그레’는 1824년 아베이루 지역 Aveiro distrito의 일랴부Ílhavo라는 작은 도시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했다. 1824년 당시 포르투갈을 지배하고 있던 주앙 왕Dom João Ⅵ의 허가를 받으면서 생산을 시작한 비스타 알레그레는 곧이어 왕실 공방Real Fábrica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예술성과 완성도를 인정받게 되었다.


 ‘코스타 노바’는 마찬가지로 아베이루 지역 Aveiro distrito에 위치한 작은 해안 마을 코스타 노바Costa Nova do Prado의 이름인 동시에, 그곳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제품의 브랜드이다. 이 동네는 1808년 아베이루 석호 등대가 오픈하면서 기존의 지역과 분리되었는데, 어부들 사이에서 들판 옆에 있는 새로운 해변(costa nova do prado)라고 불리운 데서 이름이 유래한 곳이다. 비스타 알레그레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아베이루 지역의 질 좋은 흙으로 뛰어난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갑자기 그릇 소개를 왜 하냐고? 오늘 우리는 그릇을 사기 위해 무려 20㎞를 걸어다녔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코스타노바 공식 홈페이지






#2. ‘세라미카스 나 리냐Cerâmicas na Linha’, 그릇을 무게 달아 파는 가게- 고래군


“오빠, 그런데 그 가게가 멀잖아. 내가 다른 가게 또 찾아놨어.”

“다른 가게?”

“응. 거기는 살다냐 역 근처였잖아. 여기는 알투쪽에 있어. 걸어서 다녀올 수 있잖아. 심지어!”

“응 심지어?”

“그릇을 무게 달아서 판대! 구경 가자!”


그녀가 말하는 ‘거기’는 살다냐Saldanha역과 피코아스Picoas역 사이에 있는 꽁파냐 두 캄푸Companhia do Campo라고 그릇과 가구 등을 모아놓고 파는 가게를 말한다. 며칠 전에 잠시 둘러보는 와중에 그곳 직원이 50유로 이상 구매하면 20% 할인해주는 행사를 이번 토요일까지만 한다고 우리에게 말해줬더랬다.


그래, 버스든 지하철이든 차비 드니까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마음에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섰다. 무릎과 고관절이 삐걱대지 않게 조심스럽게 경사 급한 알파마Alfama 언덕을 걸어서 내려가서는, 허벅지 뻐근하게 다시 바이후 알투Bairro Alto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세라미카스 나 리냐Cerâmicas na Linha’라는 가게이다.


 안의 선반에는 그릇과 컵 등의 도자기 제품들이 가득하다. 어떤 선반에는 7.80€/KG라는 종이가 붙어있다. 다른 선반에는 각각 가격이 붙어 있는 그릇 등이 놓여 있다. 가격이 1유로나 2유로, 좀 커다란 것은 5유로 정도밖에 안 한다. 자세히 보니 모서리에 작은 흠집이 있거나 원래 디자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선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포르투갈 생산(Fabricado em Portugal) 그릇을 Kg으로(Loiça ao ㎏) 판다는 구절이 간판에 적혀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생산 후 검수 과정에서 걸러졌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제품들을 모아서 싸게 파는 모양이다.



 우리가 찾는 ‘코스타 노바’ 제품은 매장 안쪽에 있는 방에 따로 모셔져 있었다. 그 방에는 할인제품 대신 유명한 브랜드의 여러 라인들을 진열해놓고 판매 중이었다.


“오빠 어떡할까? 가격 차이는 하나도 안 나요 거기랑. 대신 여기에 종류가 더 많다.”

“그럼 거기로 가는 게 낫지. 내일까지 할인한다고 했잖아. 오늘은 그냥 집에 갔다가 내일 갈까?”

“ 세일은 오늘까지라고 했고, 내일은 일요일이라 그 가게 쉬어. 그 때 굴벤키안 갈 때 들렀었잖아.”


 그러고 보니 내일은 일요일이구나. 결국 우리는 곧바로 그녀가 점찍어놓은 그릇을 사러 살다냐역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산 그릇들의 무게를 어깨 위에 올려놓은 채로 말이다.






#3. 가는 날이 장날- 미니양


 작년에 아베이루에 갔을때 우연히 코스타노바 아울렛을 가게 되었는데, 겉에서 보기엔 그냥 작은 점포인데 기존 가격보다 저렴하게 파는 작은 아울렛이었다. 아베이루 시장 구경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발견한 그 곳에서 난 에스프레소잔 한 세트와 커피잔 한 세트를 사가지고 돌아왔었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가면서 그 찻잔과 같은 시리즈의 그릇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년 넘게 그 찻잔들을 쓰면서도 질리지 않았던 적은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화려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에게 소박한 코스타노바 노바 시리즈는 딱 좋은 브랜드여서 약간 무리하더라도 꼭 우리 집에 데려오고 싶었다.


 세라미카스 나 리냐에서 꽁파냐 두 캄푸로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지하철도 괜찮았지만, 카이스 두 소드레 역 근처에서 버스를 타도 한 번에 갈 수가 있다. 이제 리스본에서 버스 타는 일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정도여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안 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 온다;;; 작년 벤피카 경기장에 갔을때처럼 실종된 건가? (작년 포르투갈 한 달 살기 D+25참고 https://brunch.co.kr/@minigorae/173) 암튼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결국 우리는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한다. 이미 많은 걸은 터라 힘들었지만 20% 할인이 오늘까지니까 가야만 했다.


"오빠 힘들지?"

"응. 괜찮아요."

"그릇만 사가지고 오늘은 얼른 28번 트램 타고 올라가자."

"그래요."


지하철을 갈아타고 꾸역꾸역 꽁파냐 두 캄푸에 도착! 원하는 그릇들을 겟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선 우리는 가게 맞은편에 있는 델타Q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여유를 부렸다. 근데 다 사고 나니 슬슬 욕심이 생긴다. 반찬을 담기도 하고 앞접시로 사용할 수도 있을 만한 작은 접시 딱 3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소한 욕심이.




"오빠! 나 작은 접시 3개만 더 살까봐."

"사고싶어?"

"응!"

"그럼 더 사요."

"근데... 여기엔 없고... 아까 거기에 있어."

"아까 거기? 바이후에?"

"응. 근데 거긴 세일 안하니까 다음에 사도 돼."

"아니야. 사는 김에 오늘 그냥 다 사자요."


그렇게 해서 우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2배는 더 무거워진 그릇들을 어깨에 멘 채로... 근데 길거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경찰차들이 도로에 줄지어 서 있고 차량 이동도 통제를 하더니 폼발광장 즈음 가보니 정말 많은 군인들이 정렬을 해 있다. 아마도 세계 1차대전 종전 기념행사인 모양이었다. 군인과 경찰들이 줄지어 행진하고 하늘에는 헬리콥터와 제트기가 날고... 이 행사 덕분에 버스는 일부 구간만 다니거나 다니지 않거나 했던 것이었다.



 행사를 구경하며 걸어서 다시 세라미카스 나 리냐에 도착, 사고 싶었던 작은 접시를 샀더니 이미 해가 져 깜깜해져있었다. 해가 지고 행사도 마무리가 된 것 같으니 버스랑 트램도 다시 다니겠지 싶어, 얼른 28번 트램을 타고 알파마 꼭대기 집으로 가자 했지만... 평소에 그렇게 자주보이던 28번 트램이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안았다. 결국 트램타는 것을 포기하고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걸어서 다시 알파마 우리 집에 도착을 했다.


이런 걸 보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는 거지?


무사히 한국까지 온 우리의 코스타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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