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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Dec 24. 2018

영화 <그린 북Green Book>

차별은 상식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덤앤더머>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감독 피터 패럴리Peter Farrelly의 최신작 <그린 북Green Book>이 한겨울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러 한국을 찾아올 예정이다. 처음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에서 9월 경 선보이며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일찌감치 대중들과 평론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영화는 미국에서는 이미 11월 말 정식으로 개봉했으며, 한국에는 1월 9일부터 대중들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크리스마스를 중요한 소재로 사용한 영화를, 해를 넘겨서야 개봉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영화 <그린 북>은 제 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작품상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된 상태이며, 패럴리 감독도 감독상 후보로 시상식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또한 ‘프랭크 “토니 립” 발레롱가Frank "Tony Lip" Vallelonga’ 역할을 연기한 배우 비고 모텐슨Viggo Mortensen은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도날드 셜리Donald Shirley’ 역할을 연기한 배우 마허샬라 알리Mahershala Ali는 남우조연상 후보로 각각 선정되는 등 모두 합쳐 다섯 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있는 상태이다.



차별은 상식에서 비롯된다


 영화 <그린 북>은 미국의 배우 토니 립이 뉴욕의 코파카바나 클럽Copacabana Nightclub에서 프랜시스 코폴라를 만나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겪었던 실제 사건을 담고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비교적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일을 해서 먹고 사는 프랭크 발레롱가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사는 가장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토니 립’이라고 부른다. 토니는 흑인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 박사’의 연주회 투어를 함께 할 운전사로 고용되어, 그와 함께 미국 동남부 지방Deep South을 여행한 후 크리스마스에 맞춰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영화는 이와 같은 간결한 내러티브의 흐름이라는 무대 위에 복잡한 두 명의 배우라는 악기를 올려놓고, 1960대 미국 사회의 역사와 공간이 그들을 통해 연주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끔 만든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을 가진 피아니트스이자 음악사 등의 이론과 학문도 깊이 공부하고 연구한 ‘닥터 돈 셜리’는 흑인이다. 그러므로 흔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라고도 지칭하는 당시 통념에 의하면 그는 너무나도 ‘이상한’ 미국인이다. 올바른 발음을 통해 교육받은 사람의 어휘로 말한다는 점에서 그는 ‘흑인’답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는 흑인이므로 충분한 지식을 갖춘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도 뭔가 이질적이다. 어떻게 흑인에게 교양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흑인이면 당연히 재즈를 연주해야 하는데, 스스로를 클래식 연주자로 착각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도 아닌데 ‘남성’을 사랑하는 동성연애자라는 점에서 ‘남성’으로 보기도 어렵다.


 토니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2세 미국인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다른 대부분의 이탈리아계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가난한데다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는 범죄자이거나, 적어도 예전은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뭔가 범죄를 저지른 자일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적어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2년의 미국에서는 위와 같은 것들은 당연한 것들, 이른바 ‘상식’에 속하는 사실들이었던 모양이다. 영화 <그린 북>의 도처에서 독자 또는 관객들은 이 ‘상식’의 흔적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 <그린 북>의 주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던 문제인 ‘차별’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1960년대 미국의 ‘인종 차별’이 놓여 있다. 영화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그린 북’은 ‘흑인 운전자 그린 북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이라는 가이드북을 말한다. 이 책은 흑인들을 받아주는 숙소와 음식점을 안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토니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경제적 계급에 따른 차별이나 출신 민족에 따른 차별 등도 영화 도처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영화 <그린 북>의 주제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차별’이라는 이 주제는,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데올로기가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 한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도 점차 피부에 닿기 시작한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대(大) 배우가 탄생하는 순간


 이번 영화 <그린 북>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놀랍고도 환상적인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일단 이미 연기력만큼은 인정받고 있었던 마허샬라 알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부신 열연을 보여줬다. 그가 맡은 ‘돈 셜리’ 역할은 스스로의 내면에서도 충돌하는 가치관과 감정, 그리고 욕망들로 인해 다양한 외적 갈등뿐만 아니라 복잡한 내적 갈등의 한가운데에도 놓이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부각되는 것은 비고 모텐슨이다.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에서, 바로 그 ‘아라곤Aragorn’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하지만 영화의 놀라운 흥행과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 이후에는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하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점차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는 듯했다.


 이번 영화 <그린 북>에서 모텐슨은 우리들이 기억하는 그 아라곤일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색하거나 한 것도 아니다. 영화 속 공간에 나타나는 ‘토니 립’의 모습이나 말투, 그리고 행동 양식은 누가 보아도 1960년대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에서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탈리아계 빈곤 노동자 계급의 삶 그 자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텐슨은 토니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40~50파운드(대략 20킬로그램 정도)의 체중을 늘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덕분에 독자 또는 관객들은 놀라운 변신과 뛰어난 연기력이 어울릴 때 배우가 얼마나 빛날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게리 올드만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마허샬라 알리와 함께 비고 모텐슨은 이번 영화 <그린 북>을 통해, 연기력이나 실력 면에서 최고 클래스의 배우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닥터 돈 셜리에게 틸 블루 캐딜락은 없었다


 영화 <그린 북>에서 핵심이 되는 공간은 바로 그들이 여행하는 자동차, 틸 블루 색의 캐딜락이다. 영화 포스터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 자동차는 마치 맑은 하늘의 색을 닮았다. 독자 또는 관객들은 그 캐딜락 안에서 토니와 셜리 박사 사이에 존재하는 [흑인과 백인]이나 [부자와 가난뱅이] 내지는 [남성답지 못함과 남성다움] 등과 같은 대립소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에서 돈 셜리와 토니가 함께 겪는 중요한 위기는 항상 캐딜락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자정 이후 흑인 통금’이라는 상상도 못한 법을 가진 주State에서는, 밤을 새워 이동하는 와중에 경찰들에게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덕분에 엔진이 과열되어 연기가 나면서 캐딜락이 고장 나는 장면은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의미심장한 암시로 느껴지게 된다.


 캐딜락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간은 경찰이 캐딜락을 두 번째로 불러 세운 시퀀스이다. 앞서 인종차별자들이었던 경찰이 불러 세우면서 고초를 겪었던 사건을 기억하는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돈 셜리와 토니의 캐딜락을 불러 세운 경찰이 뒷바퀴의 고장을 알리고 캐딜락을 고칠 수 있게 만드는 일련의 장면들은 일종의 안도감과 함께 잔잔한 감동의 정서를 경험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시퀀스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제시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해심과 배려심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라는 명제를 되새겨보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픽션’이지, 결코 실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혹시 눈썰미가 좋은 독자 또는 관객이라면 엔딩 크레딧에서 토니의 아들인 닉 발레롱가Nick Vallelonga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며, 영화 내에도 ‘오기Augie’ 역으로 출연했다는 구절을 발견했을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토니의 또 다른 아들 프랭크 발레롱가 주니어Frank Vallelonga Jr.는 이 영화에서 토니의 형제인 ‘루디’ 역으로 출연했다. 어쩌면 여기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본 독자 또는 관객 중 누군가는 결과적으로 본다면 셜리 박사의 가족은 이 영화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돈 셜리의 형제인 모리스 셜리의 인터뷰에 의하면 돈 셜리 박사는 토니를 친구가 아닌 피고용인 내지는 운전사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에서 모리스 셜리는 “이것이 맥락과 뉘앙스가 중요한 이유”라면서, “성공한 흑인 예술가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한 가장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각색 과정에서 삭제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셜리의 가족들은 이 영화에 대해 불매운동boycotting the film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모리스 셜리는 “나의 형제(돈 셜리)는 절대 틸 블루 캐딜락을 타지 않았고, 검은 색 리무진을 탔다. My brother NEVER had a teal blue Cadillac, it was always a black limousine.”고도 밝혔다. (「FAMILY OF BLACK MAN, DON SHIRLEY, PORTRAYED IN “THE GREEN BOOK” BLASTS MOVIE AND ITS “LIES”」, by Samara Lynn, https://www.blackenterprise.com/don-shirley-the-green-book-family-blast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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