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의 경계
#1. 한 달, 머물기에는 너무 짧다- 미니양
한 달을 한곳에 머물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지금 나는 여행자인 것일까 아닌 것일까’, 혹은 ‘지금 나는 여행 중일까 아니면 일상 속에 있는 걸까’ 하는 그런,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일 수도 있고 뭐 그런 생각 말이야.
어쩌면 ‘한 달 살기’라는 건, 여행과 일상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확실한 건, 리스본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는 너무 짧다는 거야.
#2. 한 달, 머무는 여행하기에는 짧진 않다- 고래군
“우리는 리스본에서 여행 중일까, 일상을 보내는 중일까?”
문득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말은 내 안에 작지만 여러 겹의 이어지는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면 어딘가에서 한 달 동안 머무는 것이 결코 느긋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매일매일 해먹는 식사만큼 설거지도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쓰레기도 정리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며칠 동안 묵은 빨래를 들고 코인세탁소에 다녀와, 옷들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하루하루 남은 날들은 쉬지 않고 점점 줄어만 간다.
잠시 멈춰 서서 리스본에 도착하고 지금까지 지낸 날들을 돌이켜보았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가 할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거나 놓아버려야만 했던 일들이 수없이 남겨진 풍경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고, 그리고 이제 남은 날들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보다 애초에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리스본에 있는 것이 맞나? 그저 서울에 있는 내가 잠시 리스본을 스쳐지나가고 있는 중인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말대로 어쩌면 한 달이라는 시간은, ‘머물다’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머물다’라는 말은 지금 우리의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의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일까.
하지만 이렇게 리스본에서 지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지내게 될 날들을 헤아리다 보니, 그 사이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지도 않을 내일 때문에 불안과 초조함에 갇혀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애써 큰 목소리로 화를 내던 나를 발견한다. 홀로 있는 시간에 남몰래 울기도 하던, 하지만 그 사실을 감추고 애써 의연한 태도를 연기하는 나를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이 바쁘게 걷고 뛰는 속도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함께 뛰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안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에 갇힌 나를 발견한다.
그 모든 것들이 허상(虛像)이라는 진실을 발견한다. 나는 그저 여기에 있다.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분명히 그 순간에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는 ‘나’가, 지금-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실을 발견한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긴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는 여유에 몸을 담아본다.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건넬 때,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받는 시간에 귀를 기울여본다. 아름다운 석양이 노을빛으로 물들인 떼주 강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며 잠시 눈가에 눈물을 고여 보기도 한다. 이곳에서 머무는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 달이라는 기간은, 그래 맞아, 우리의 여행이 일종의 ‘머물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래도 짧은 것만도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