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언어학자의 소설책 다웠다. 문장들이 매우 아름다웠고 사색적이었다. 연극 대사 같기도 하고.. 근원적이고,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주요 등장인물들 모두가 철학가이자 사색가였다.
회상에 대한 찬가 화자 '나'는 회상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렸을 때의 회상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의 추억을 순차적으로 떠올린다. 화자를 지탱해준 것은 어렸을 적 행복하고 황홀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과 재회할 때, 그 추억의 인물을 다시 만났을 때 그의 기쁨은 극대화된다. 화자는 '회상'과 '재회'를 찬양한다. 그 어떤 새롭고, 경이로운 것보다 지나간 추억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기쁘고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재회며, 재발견, 회상 - 이런 것이야말로 거의 모든 기쁨과 모든 즐거움의 비밀스런 원천인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보거나 맛본다는 것 - 그것도 아마 아름답고 위대하며 유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대체로 지나치게 생소하여 우리에게 기습적인 느낌을 주며, 안정된 마음으로 그 일에 임할 수는 없다. 즐기고자 하는 안간힘이 흔히 즐기는 행위 자체보다 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략) 바로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느낌 - 이런 경험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내면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상에서 현실적인 사랑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그의 내면 안에서 '수호천사'로 자리 잡았다. 현실 속 그녀와의 만남은 길고 깊지 않았다. 짧은 만남과 단편적인 모습에서 매일의 상상과 되새김이 덧붙여져 '수호천사'로 재탄생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수호천사'와 매일 대화하며 그렇게 친밀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자기 안의 '수호천사'는 진짜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만남이 성사되자, 그는 본인 안의 '수호천사'를 지워야 했다. 진짜 그녀를 만나고 그녀를 알아가야 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순수했다. 그리고 본인과 결이 같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됐다. 좋아하는 책, 그림, 작품 등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그 앞에서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고, 그는 그녀의 세계에 동화됐고, 존경했다. 그는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을 숨기고, 더 깊은 친밀함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현실 안에는 존재하지도 않고 또 존재할 수도 없는 그런 형체로 부상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의 수호천사 - 나의 또 다른 자아로 화해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와 얘기하는 대신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어떻게 그녀가 내게 그런 존재로 화했는지를 스스로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럴 것이, 실은 나도 그녀를 거의 알지 못했으니까. 그것은 마치 사람의 시각이 하늘에 뜬 구름을 여러 형상으로 변화시켜 보듯이, 나의 상상력이 어린 시절 하늘에서 마술처럼 불러낸 몽롱한 환영이요, 소리 없이 암시된 현실의 윤곽을 소리로 하여 그려낸 하나의 완성된 환상이었다는 느낌이다.
현실에 초연한 인물 그가 사랑하는 여인, 마리아. 그녀는 현실에 초연한 인물이다. 오랫동안 홀로 아픈 시간을 견뎌와서 그런 걸까. 매사에 차분하며, 현실적인 것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이며, 정신적인 것들에 가치를 둔다. 그녀가 추구하는 사랑, 신앙, 삶 모든 것이 근원적이고 플라토닉스럽다. 어쩌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현실은 제한적이었다. 육체도, 관계도, 신앙도, 삶도. 그녀가 컨트롤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심오한 내면세계뿐이었으리라. 아픈 몸에 갇혀,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며, 책을 읽고 세계관을 정립하며, 기도로 신과 함께 교통 하며... 그렇게 현실에 초연한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그녀 덕분에 화자는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쨌든 내게는 하나의 특권이 있답니다. 그것은 나의 병고와 외로움이지요. 내게는 청춘 남녀들이 퍽 애석하게 여겨질 때가 많아요. 그들 스스로가 또는 그들의 가까운 친구들이 자기네를 향해서 - 사랑이나 사랑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어떤 우정이나 신뢰감도 갖지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많은 것을 잃는답니다. 처녀들은 자신의 영혼 안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를 또 숭고한 남자 친구의 진지한 권고의 말 한마디가 그 잠을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요. 그런가 하면 젊은 남자들의 경우도 만약 자신의 내면의 투쟁을 멀리서 지켜봐 주는 애인을 대상으로 가질 수 있다면, 아마 그 옛날 기사도적 덕성을 되찾을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거기엔 사랑이, 아니면 사랑이라고 칭해지는 것이 늘 끼어드니까요. 무섭게 고동치는 가슴이라든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희망, 예쁜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환희, 달콤한 감상, 어쩌면 약삭빠른 타산까지 한마디로 순수한 인간애의 참모습이라고 할 저 대양을 교란시키는 온갖 것이 끼어든단 말입니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 그와 그녀의 대화는 연극 대사 같기도 하고, 철학자들의 토론 같기도 하다. 사랑에 대해, 신앙에 대해, 삶에 대해 그와 그녀는 문학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풍성한 대화의 향연을 펼친다. 화자도 굉장히 플라토닉스럽지만 마리아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자라고나 할까? 그는 마리아 앞에서 '현실'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주장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면에서 깊이 새겨볼 만하다.
많은 이들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 정신에 들어서지 못하게 막는 요인은 다름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계시가 미처 다가오기 전에 기독교 교리가 먼저 계시를 앞세우는데 있는 것이랍니다. 남들이 공짜로 가져다주는 믿음에 대해서는 내게 권리가 없다는, 또 이해도 못하면서 어릴 적부터 배워 수용한 믿음은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라는 그런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대하는 방식 마리아는 육체적인 사랑을 상상해본 적도 기대한 적도 없다. 지금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그와도 세상에서 말하는 연애나 시답지 않은 사랑의 관계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영혼의 교감 속 영원한 우정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긴다. 그 또한 세상이 말하는 순간적이고, 흥분된 육체적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 빠졌다. 정신적 교감 속에서 싹틔운 그의 사랑은 더 뜨겁고 온화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만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 했다. 소유가 아닌 그녀의 배려자, 연인, 아빠, 그 무엇이 되든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 했다. 마리아는 그의 사랑 고백을 듣고 당황하며 밀어내려 하지만 결국 뜨거운 키스로 서로의 사랑을 완성한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그녀의 병고의 지팡이가 되고, 그녀는 내게 위안이나 사랑스런 배려자로 머물기를 기원할 뿐인 것이다.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현실을 살아내는 방법 그는 결국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마리아를 사랑하고 표현한 것에 있어서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남겨진 삶을 홀로 버텨내야 했다. 찬란하고 황홀했던 추억과 회상과 재회를 통해 그는 또 버텨내고 살아낼 것이다.
내가 짊어졌던 것처럼 자네도 삶을 짊어지게. 헛된 슬픔에 사로잡혀 하루라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네. 자네가 아는 인간들을 도와주게나. 그들을 사랑하면서, 한때 이 세상에서 마리아 같은 성품의 인간을 만나 알고 지냈으며 사랑했던 사실을 신에게 감사하게. 또 그녀를 잃은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