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물건 다시 보기~!
전세 만기가 지났는데도 집이 나가지 않아 1년 반 넘게 주말부부와 반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4남매를 혼자 양육하며 지칠 대로 지쳐갔다.
다행히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갑자기 집이 나가게 되어 보름 안에 6인 가족 이사 준비를 했다.
‘언젠가 이사 가겠지..’라는 생각으로 비워야 할 물건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이번 이사의 목표는 5톤 트럭 한 대에 모든 짐이 실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사 날짜가 확실히 정해지고 나니 움직임이 민첩해졌다.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2주간 보관이사를 하게 되었다.
보관이사는 5톤이 기준이라고 한다.
비울 물건의 기준은 딱 하나였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인지!
도움 주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만 가지고 이사하고 싶었다.
기준을 세우고 보니 비움이 조금은 수월했다.
고민할 시간도 없었고 5톤이 넘어가면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했기에 더욱 빠르게 비워낼 수 있었다.
노후주택에 살고 있는데 마당에도 방치된 물건들이 많았다.
이사 오기 전에 사시던 분들이 마당에 깔아 두고 가신 천막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 잡초 나지 말라고 덮어두신 것 같았다.
늘 버리고 싶었지만 무게도 꽤 나가고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몰라 그냥 흐린 눈을 하고 살았다.
그렇게 2년 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다니.
나란 사람 참 게으르다.
깔려있던 천막은 무게가 상당해서 접을 때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혹시나 하고 당근에 나눔 한다고 올려보았다.
살고 있는 곳이 논밭이 많은 경기도라 필요하신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 올려놓았다.
바로 연락이 왔고 다음 날 상태 보고 가져가도 되겠냐고 하셨다.
위에 묻어있던 흙먼지들을 털어내고 오실 때를 기다렸다.
같이 천막을 펼쳐봤다. 크기가 꽤 되었다.
어림잡아 6미터 정도 될 거라고 하셨다.
원하던 상태가 아니셨는지 가져가지는 않으시겠다고 했다.
다시 6미터 정도 된다고 수정해서 올렸다.
또 연락이 왔다.
다음날 SUV차량이 우리 집 앞에 왔다.
돗자리를 먼저 깔으시고 상태도 확인하지 않으시고 가져가셨다.
‘이런 것까지 나눔 가능하다고?’ 조금 놀랐다.
어디에 쓰시는 거냐고 여쭤봤더니 밭에 깔 거라고 하셨다. 거기도 잡초가 많이 나나보다.
내가 보기엔 쓰레기 같은 물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당근에 나눔 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벽지에 곰팡이가 엄청났다.
장판을 걷어보니 결로로 인해 물이 흥건했다.
물건이 가득하게 차 있어서 집 보러 왔을 때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계약할 당시에 전세금을 낮춰 들어와서 하자보수는 우리가 하기로 했다.
결국 다음날 도배를 하고 조금 지나 장판도 새로 했다.
짐이 있는 채로 도배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니멀라이프를 해서 나름 짐을 줄여왔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노후주택이라 거실이 큰 것도 한몫했다.
9월의 여름 같은 날씨였는데 바닥과 벽지 말린다며 보일러 켜고 거실에서 짐과 함께 6인 가족이 며칠간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장판을 그냥 버리기가 왠지 아까웠다.
마당에 깔아 두면 흙바닥보다는 물놀이하기도 생활하기도 조금 편할 것 같았다.
방에 깔려있던 장판을 마당에 깔았다.
유용하게 쓰였다.
물놀이할 때 그 위에 매트 깔고 인덱스 수영장을 설치해서 놀았다.
미끄럼틀도 장판 위에 놓고 탔다.
겨울에는 장판 위로 눈이 덮이면 스케이트장처럼 미끄러워서 그 위에서 잘 놀았다.
우리에겐 유용했지만 이사 오시는 분들에게는 짐이 될까 싶어서 마당에 있는 물건들을 다 처분하기로 했다.
천막도 가져가셨으니 장판도 혹시 필요하신 분이 계실까 싶어서 나눔 한다고 글을 올려놨다.
또 바로 연락이 왔다.
장판 위에 있는 흙더미들도 다 옮기고 위에 있던 물건들도 다 치우고 돌돌 말아 묶어서 기다렸다.
다시 끈을 풀러 세로로 반을 자르셨다.
두 개를 합쳐서 다시 돌돌 말아서 캠핑 웨건에 실어가셨다.
‘일머리,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해야 하나?
캠핑 웨건을 가져오신다고 해서 어떻게 가져가실지 궁금했는데 반을 잘라 두 개 겹쳐 말아 가실 줄은 몰랐다.
역시 어르신들의 지혜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엄청 더운 날이었는데 먼 거리에서 오셔서 힘드실 것 같아 주스 하나 건네드렸다.
장판도 그냥 버렸으면 쓰레기가 되었을 텐데 끝까지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대리석 상판도 전에 사시던 분들이 두고 가셨는데 우리 아이들은 칠판으로 사용했다.
마당에서 놀 때 크레파스로 색칠도 하고 글씨도 쓰며 놀았다.
윗집 할머니가 가져가셔서 써볼까 하셨는데 너무 무거워서 못 들고 가겠다고 하셨다.
사다리와 넉가래, 캠핑의자는 혹시 안 가져가면 달라고 하셔서 드렸다.
대리석 상판은 이사 당일에 또 혹시나 하고 당근에 나눔 한다고 올렸더니 10분도 안 되어 바로 가지고 가셨다.
이렇게 빨리 비울 수 있는 물건들이었는데 왜 여태 가지고 있었던 걸까?
비우고자 하면 방법은 다 있구나 싶었다.
너덜너덜 해 진 캠핑 매트도 나눔 한다고 올렸더니 바로 가져가셨다.
볼 때마다 ‘저거 비워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하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비울 마음이 들 때 바로 비워야겠다 다짐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근으로 나눔 하며 깨달은 바가 많았다.
그냥 버리기 전에 한 번 나눔 게시판에 글을 올려보며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내가 보기에 쓰레기 같은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물건 비울 때 귀찮을 수 있지만 나눔 글 한 번 더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