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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 사남매맘 Jul 13. 2023

왜 못 비워? 내가 비워줄게?!

가족 물건은 나중에, 내 물건 먼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비우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어 가며 집은 많은 물건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거실에는 국민육아템들이 쭉 늘어져 있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워내겠다고 결심하면서도 못 비워내는 물건들이 있었다. 도대체 왜 해 지난 다이어리, 가계부, 다 쓴 수첩들을 비우지 못할까? 사용하지도 않는 일회용 수저, 젓가락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한 다발씩 모아두는 것일까? 하나는 추억의 물건이기에 비우지 못하고, 또 하나는 언젠가 쓸지 모른다는 마음에서이다.


미니멀라이프 실천 초기에 비우기에 몰두하여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남편이 군생활하며 썼던 일기를 본 것이다. 내 일기장은 사진을 찍어두고 비공개로 SNS에 올려두고 다 찢어서 버렸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나중에 보면 창피할 내용들이 많아서였다. 남편 일기는 아주 놀라우리만큼 구체적이고 성격답게 섬세하게 적혀 있었다. 매일의 삶을 마치 내가 군대에 있는 것처럼 써놔서 ‘한쪽만 읽고 넣어둬야지’ 했는데 계속 보게 되었다. 핑계가 참 좋다. 일기를 통해 그 당시 남편이 좋아하던 여자친구에 대해 알게 되고 말았다. 꺼내보면 안 될 것에 손을 대고 참 나쁘게 ‘00이 누구야?’ 하며 놀리기까지 했다. 난 참 나쁘고 철없는 아내이다. 남편은 그날 이후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받은 모양이었다. 다음날 일기장 몇 개를 조용히 비워냈다.


가족의 물건은 함부로 건들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가 너무 경솔했다. 미니멀라이프를 한답시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 친절하고 현명하게 내 물건부터 싹 비워낸 다음에 가족의 물건은 나의 변화들을 경험하게 한 다음에 천천히 비워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와 가족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미니멀라이프인데 가족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비워나갈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가끔 나에게 ‘엄마가 그거 버렸지?’ 라며 확신에 찬 물음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진짜 몰래 비워낸 것도 있기에 찔릴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엄마 몰라~’하며 대충 얼버무리기도 한다.


미니멀라이프 처음 시작할 때는 비움에 열중하느라 마구잡이로 눈에 보이는 족족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허락을 구하지 않고 비워나갔다. 이제는 기억력이 좋아진 첫째, 둘째에게는 한 번은 물어보고 허락을 구하고 비운다. 다 기억하고 나중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염려되어서이다. 내가 몰래 비움으로 인해 아이들이 물건에 더 집착하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물건들만 남기는 작업이 필요한데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이것도, 저것도 언젠가는 사용할 거라는 욕심을 먼저 비우고 지금 쓰이는 물건들에 집중해야지. 가족의 물건 말고 내 물건을 먼저 비워내야지. 홀가분한 기분을 맛보고 나면 가족들도 비움의 기쁨을 알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내 옷을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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