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커튼을 열었습니다.
'오늘 날씨... 대박!!!!!!'
'왜 이렇게 좋은 건데... 뭔 날인가?'
이런 아침을 여유롭게 맞을 수 있는 오늘이 너무 좋았습니다. 매일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또 한 번 해 봅니다. 그럴 수 없기에 어쩜 오늘이 더 소중한 거겠죠?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에 잠시 베란다 소파에 머물렀습니다.
드디어 오늘이 디데이인가 봅니다. 그렇게 시작하고 싶던 미니멀 라이프가요. 두근두근 두근두근... 제가 선택한 미니멀 라이프의 처음은 바로 물건 버리기였습니다.
아무리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 봐도 물건들은 여전히 많았고, 거기서 오는 답답함과 벅찬 집안일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저의 노력에도 그 많은 물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런 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점점 더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이런 물건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물건들을 비워내는 일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 비우다 : 일정한 공간에 사람, 사물 따위를 들어있지 아니하게 하다.
비움, 말은 참 쉬운데 실행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비움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모습도 웃기고요. 어설픈 초보자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물건을 먼저 비워내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 또한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시작인데 벌써 포기하는 건 좀. 그때 문득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어요. 이럴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쓰레기들을 비우는 것이라고.
쓰레기?
맞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쓰레기요.
단 매일 나오는 생활 쓰레기가 아니라요, 집안에 있지만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말합니다. 이 물건들은 언젠가 사용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만 그 언젠가는 도대체 언제일까요?
그렇게 집안에 쓸모를 잃은 물건들부터 버리기로 했습니다. 멀쩡하지만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 고장이 났지만 고쳐 쓰고 싶은 마음에 남겨둔 물건들 모두를 말이에요.
집안을 어슬렁 거리며 버릴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지만, 버리는 것이 처음이라 그조차도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아~ 쉬운 게 하나도 없고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하루 중 제일 많이 머물러 있는 곳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어요. 화장대로 쓰이면서 책상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곳, 안방에 있는 서랍장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장품과 잡동사니 물건들로 가득 찬 첫 번째 서랍칸을요. 화장품 샘플은 기본이고, 얼마나 정리를 잘하고 싶었음 빈 박스를 곳곳에 숨겨두기까지. ‘아이고, 정말 가지가지한다...'
뭔가로 가득 찬 서랍장 안에서 버려야 할 물건들 아니 쓰레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쓰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집안에서는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말이에요. 아이들 어릴 때 쓰던 밥그릇, 여러 크기의 빈 박스들, 앞머리도 없으면서 헤어롤은 왜 있는 건지. 지갑이 있는데 동전지갑은 또 언제 구입한 거냐고.
그렇게 이 모든 것들을 비워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어요.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망설이던 그 시간요. 왠지 이 물건들은 다 쓸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게 언젠데?”
아!!...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거였나 봅니다. 이래서 이 물건들을 쓰레기라고 했던 거였나 봐요. 그제야 쓰임을 잃은 물건들을 왜 쓰레기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결국 물건들을 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되나 봅니다.
물론 버렸다는 감격도 잠시, 시작은 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빈 공간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건들 역시 코웃음을 치며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요.
급하면 체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욕심을 내려놓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의 비움을 끝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물건 버리기였어요. 참 어설프죠? 풉.
그런데 말이에요.
몇 개 안 되는 물건들이었지만, 비움을 하고 나니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그저 버린 물건들이 아까워서 그러려니 했는데. 계속되는 물건 버리기에 어느 순간 그때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홀가분함...
야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느꼈던 바로 그 홀가분함이라는 걸요.
그럴수록 더욱더 비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 시작하길 진짜 잘한 거 같아...’
어쩜 지금껏 비워 낸 물건들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저 모르는 척! 처박아 놓았던 건 아니었는지.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위해 물건들을 비우고 있는 지금, 이제는 당당하게 그 물건들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지만 이제는 내 공간에서 나가주라고.
물건 버리기를 통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거 같습니다. 남아있는 물건들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도요. 비우기를 하면 할수록 단순하고 홀가분한 삶을 더 빨리, 더 많이 만끽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깁니다. 덕분에 물건들을 버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물건을 비우다 보니 결국 저만의 버리기 기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기준은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책에 나오는 비움의 기술을 적용한 것이지만요.
첫째. 확실한 쓰레기부터 버리기
둘째. 일 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 버리기
셋째. 한 가지를 들이면 두 가지 버리기
넷째. 고마움을 전하며 버리기
처음 물건을 버릴 땐 무엇이든 당장 버리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생기지만 막상 버리자니 무엇부터 버려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망설이게 됩니다. 그때 버리기 기준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꼭 제가 정한 기준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시작이 어렵고 실행은 더 어려운 분들에게 분명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나만의 비우는 기준도 분명 생길 거예요.
우리가 처음 비워내야 하는 물건은 아마도 상태가 불량한 것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상태가 불량하니 사용하지 않게 되고, 그저 보관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 물건들이요. 그런 물건들에게 굳이 공간을 내줄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고쳐서 사용하겠다고 하신다면 당연히 그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면 했던 물건들이 많았으니까요. 특히 선물 받은 것들은 말이죠. 하지만 물건 하나 고치는 것도 맘처럼 쉽지는 않더라고요. 어릴 땐 전파사 같은 곳들이 참 많았었는데. 요즘은 그런 점들이 또 아쉽게 느껴집니다.
다음은 어떤 물건을 비워내야 할까요? 바로 버리고 싶은데 아까운 물건들입니다. 이런 물건들은 좀 더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아끼던 낡은 옷을 비워낸 적도 있으니까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이불도 있고요. 이처럼 비움이라는 것은 언제든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그냥 시작해 보면 안 될까요?
오늘도 여전히 물건을 비우며 살아갑니다. 처음 시작했던 그때처럼 비울 물건이 많지는 않지만 비움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는 분들이 왜 물건을 버리라고 했는지도 충분히 알게 되었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비움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버리는 물건에 대한 후회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잠시 넣어 두세요. 후회대신 아쉬움이 남 낀 했지만 인생에서 아쉬움 없는 그런 것들이 있기나 할까요? 이것이 비움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계속해서 물건을 비워내다 보니 물건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물건이라고 해도 왜 비워야 할까를 한번 더 생각하게 되거든요. 물건을 들이는 일에서도 말이에요.
요즘은 오히려 무엇을 비울건지 보다 어떤 것을 남길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답니다. 이것이 제가 사는 미니멀 라이프인 거 같아요. 물론 비움을 통해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비움을 멈출 수가 없나 봅니다. 저 물건 버리기 참 잘한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