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수록 미니멀 라이프와 함께 하는 삶은 점점 더 단순하고 홀가분하게 바뀌었습니다. 물론 물건들에 대한 선택과 비움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지만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너무도 좋습니다.
이런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비움에 또 한 번 집중을 해요. 이제는 작은 물건들뿐만 아니라 큰 가구들의 비움도 시작했습니다. 크기가 컸기 때문에 작은 물건들을 비울 때보다는 번거롭고 힘이 듭니다. 버리기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너무도 더뎠고요. 그래도 해 보는 거죠 머. 안 그래요?
얼마 전 서랍장과 책꽂이를 비웠습니다. 이 두 가구만을 비웠음에도 집안의 변화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이래서 큰 물건들을 비워야 한다고들 했나 봅니다.
집안 살림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던 그때 여러 힘든 일이 와버렸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대신 믿고 의지하던 외할머니가 엄마 곁으로 갔고요. 제게 남은 마지막 기둥이었던 아빠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렇게 한순간에 고아가 돼버렸어요.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헛헛하고 슬픈 일인 거 같습니다. 거기에 사랑하고 믿었던 남편과 이혼까지. 그것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말이에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더 설레어하곤 했었는데. 그 해에는 그런 마음을 느끼지 못했던 거 같아요. 불행하게도.
사실 이혼은 너무도 간단하게 끝이 났습니다. 정말 별거 없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법원에 둘이서 나란히 앉아 판사님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을 하니 이혼 확정!! 그렇게 이혼 확인서를 받았으니 머.
이혼 접수를 하면서 아이들의 양육비와 관련해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그래도 협의 이혼이라 따로 재판을 한다든가 싸워야 하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던 거 같아요. 그저 바라는 거라곤 오직 양육비를 잘 줬으면.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죠? 남들의 양육비 전쟁이 저에게 올 줄은 몰랐습니다. 닥치고 보니 힘듦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지금도 욕 한 바가지 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들의 아빠자격을 스스로 놓는 일이라는 거, 진짜 슬픈 이야기 아닙니까? 에휴~
이혼의 사유는 복합적으로 오는 거 같습니다. 처음엔 서운함으로 시작해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싸우다 결국 헤어짐으로 끝나는 그런.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쯤 위로가 되었던 사람을 만났었나 봅니다.
부부에게 사랑은 당연하고 의리는 필수라고 하던데. 저희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저는 바람을 피운다는 것에 있어서는 그리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었기에, 결국 이혼이란 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바람이란 건 한때 죽을 만큼 사랑했던 한 사람을 바닥 끝까지 처 밀어 넣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 감사하게도. 살짝 신기했던 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이혼 전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단지 남편만 없는 것일 뿐.
이혼이란 게 이런 건가 싶네요. 사랑하고 의리를 지키며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실패했습니다.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지만 음... 그냥 더 열심히 살라고 기회를 한번 더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헤어짐은 살아가는 데 있어 너무도 큰 고통을 줍니다. 저에게 그런 날이 왔을 때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니멀 라이프가 옆에 있어준 덕분인 거 같아요.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는 최소한의 물건으로 사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요.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도 비워내고 그만큼 더 홀가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미니멀이 아니었다면 어쩜 매일 울고불고 난리 쳤겠죠?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을 놔버린 채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을지도 모르고요.
가득 차 있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비워지며 드러난 빈 공간을 보며 위안을 삼았던 거 같습니다. 남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비롯해 여러 복잡한 마음까지도 비워낼 수 있을 정도로.
과연 미니멀 라이프를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도 하기도 싫습니다. 문득 남편을 향한 배신감에 치를 떨긴 하지만. 그럴 땐 그냥 물건 하나를 비워 줍니다.
비움을 통해 집안뿐만 아니라 머릿속과 마음까지도 단순하고 홀가분해져 갔어요. 빈 공간을 보며 흐뭇해하는 저를 만나기도. 이것이 제가 사는 미니멀 라이프의 힘인 거 같습니다. 이제는 미루고 미뤘던 결혼사진들을 비워내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으로 외쳐봅니다. ‘미니멀 라이프, 아자!!’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비우는 건 기본이 되었고요. 들이는 거에 있어서도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답니다. 제가 정한 기준에 따라 열심히요.
힘든 일들은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일주일 뒤, 한 달 뒤에도 언제든지. 그래서 오늘도 미니멀 라이프에 소홀하지 않으려 합니다.
뜨거운 물에 찬물을 섞어 미지근한 물을 만드는 것처럼 단순함과 홀가분함을 가득 채워 놓는다면 힘든 일이 찾아와도 미지근한 물처럼 덜 힘들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들쯤이야~ 당장 꺼져!"
언젠가 제 앞에 있는 힘듦에게 코웃음을 치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이유 하나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