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ㅇㅇ씨 혹시 '메갈리안'이세요?
애티튜드가 나쁘고 버릇 없는 신입으로 낙인 찍힌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직급 높은 아재가 술자리에서 나한테 물었다.
ㅇㅇ씨는 메갈리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본인 : 어떤 걸 여쭤 보시는 거에요?
- 아재 : 메갈리아에 대한 본인의 견해나 의견을 그냥 물어보는 거에요.
이 때 촉이 왔다.
'아 이 사람은 나를 성평등에 대해 내 주장을 온라인 상에서든, 어디서든 급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줄 아는구나' ('메갈리아'란 정확한 어원과 커뮤니티의 성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여초 일베'로 통용되는 게 사실이니까. 본인 또한 부끄럽지만 메갈리아가 어떤 커뮤니티인지 직접 사이트를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알고 있다.)
- 본인 : 글쎄요, 전 그 커뮤니티를 들어간 적이 없어 어떤 글이 올라와있는지도 몰라서, 무슨 답변을 드려야 할지...
- 아재 : 아니, 커뮤니티를 들어가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지지, 반대의 입장은 표명할 수 있을 거 같은데?
- 본인 : 그렇다면, 전 메갈리아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아서 '여초 일베' 정도의 이미지가 그 커뮤니티에 대한 제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아재 : ㅇㅇ씨 주변에는 그런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사람 많지 않아요?
뭘 더 캐묻고 싶은건지 감이 안 와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나와는 관련 없는 얘기인 것을 어필해야겠다 싶었다.
- 본인 : ㅁㅁ님(아재를 지칭하는 직급)이 저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셨는지 제가 저번에 '성차별을 운운한 발언'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 어떠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혀 활동한 적도 없고, 특히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단체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명하는 커뮤니티는 앞으로도 활동하지 않을 거에요. 별로 제 성향과 맞지 않아서..
- 아재 : ㅇㅇ씨가 그렇게 커뮤니티에 활동 안 하신다는데, 뭐 더 할 말은 없네요. 하지만 저는 앞서 언급하신 '극단적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 많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에요. 겉으론 아닌 척, 지지 안 하는 척 하고 있더라도 커뮤니티에 활발히 활동하는 유저들이 제 주변에도 정말 많을 거 같아요.
???
결국은 답정너였나..
내가 무조건 아니라고 해도 그의 머릿속엔 단순한 알고리즘이 박혀있는 것 같았다.
''성'에 대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사람은, 페미니스트다.'
그리고 그의 머릿 속엔 페미니스트 활동을 대변하는 단체는 '메갈리아'였던 것이다.
나 또한 메갈리아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기성 세대 (특히 남성)의 입장에서 페미니스트와 메갈리아는 남성의 권리를 뺏어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도록 노력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일 뿐이다.
아재의 입장에서나, 통용적으로 정의되는 정의에 입각하면 난 정말 페미니스트였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가 나와 '아재' 사이에 합치되는 부분이 있을까? (이것도 답정너이다. NO가 답인 문제다)
다시 한 번, 꼰대 조직에서 '성차별'을 운운한 댓가를 느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내가 페미니스트로 낙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건 당일 팀장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 데에 대한 사과 문자를 보냈을 때 받은 팀장의 답장.
그 때는 참 허탈하고 관리자가 이런 발언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맞나 싶다가도, 술자리에서 내게 '메갈리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아재를 보며 '이번 회사에선 진짜 망했구나'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