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연속
학생이 눈물 범벅이 되어 찾아왔다.
또래보다 한살이 많은 학생. 누구에게나 그렇듯 학생에게도 사연이 있다.
한 번 잠들면 일어나지 못하는 탓에 밤을 샌 뒤 학교에 꾸역꾸역 겨우겨우 등교했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 학교를 오는 용기를 내는 선택을 했는데, 칭찬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자신의 선택을 다시 자책하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등교한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와 원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을 그렇게 선택과 동시에 괴로움에 몸서리친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이과 숨이 무섭다고 했다. 그냥 모든 시선과 숨소리마져 .
아이들이 자꾸만 온라인상으로 숨는다. 자꾸만 파고든다.
눈이 없고, 숨소리가 없는 곳으로 파고든다.
그런데 자꾸만 어른들은 밖에서, 사람들과 생활해야된다며 핸드폰과 기기를 뺏는다.
아이는 더이상 숨을 곳이 없다. 선택권 조차 없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없다.
아이들에게 눈을 마주치고 숨소리가 거칠게 들리는 선택을 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에 불편해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
전화를 통해 "안녕하세요, 000친구 000인데요. 000있나요?" 등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대활하고 인사를 하고 목소리로도 누군가를 구분하는 능력은 선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습득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글씨로도, 눈으로도, 목소리로도 친구도 가족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가 됐다.
아이들에게 선택권 조차 주지 않고 무조건 나오라고한다.
아이들에게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은 채.
선택권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어야 하는 부모님 조차 아이들에게 우선순위가 다르다보니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선택의 1순위가 되는 것을 해야만 사랑받는 조건적 사랑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1순위가 무엇인지 모른 채, 내가 끌리는 친구를 골랐지만 조율을 잘 하지 못한다.
숨막히는 그 전쟁 속에 오늘도 아이들은 하루를 견뎌가는 선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