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동안, 말하지 못한 사랑을 꺼냈다

챕터 : 걷는 동안

by 민 과장


’ 사랑해 ‘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는다면 그날은 하루 종일 행복하다. 그런데 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못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생 때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예전일까. 기억을 되짚어보면 아마 초등학생 시절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은 히어로물 주인공 같았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레고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나로서는 만들기 어려웠다. 부모님과 만들다 지쳐 먼저 잠들었다. 다음 날, ‘다시 만들어봐야지’ 하며 눈을 비비고 깼는데, 눈앞에 보인 건 완성된 레고 자동차였다.



사실 레고라는 게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는 장난감이지만 그 당시 나에겐 완성된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게 중요했다. 손보다 큰 자동차를 보고, 잠이 덜 깬 얼굴로 어버버 웃으며 눈물이 고였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이렇게 애정 표현하던 시기는 길지 않았다. 아이들이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당장 중학생이 되자 표현의 빈도가 줄었다. “엄마, 아빠 최고”라는 말대신 “아!”만 외쳤다. 학교의 모범생이던 내가 집에 오면 일진처럼 굴었다. 고작 14살짜리가 말이다.



문제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척 어렵다. 한 번은 회식 후 집에 들어와 술김에 부모님을 안으며 ‘내가 많이 사랑해, 엄마 아빠는 최고다’라고 말했는데, 이마저도 술기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더욱 모순적인 건 지금의 아내에겐 연애 때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며 뽀뽀하는 내 모습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짜증 난다는 말보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왜 우리 부모님은 남들처럼 못해주지?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왜 아빠는 저러는 걸까? 왜 엄마는 매번 저렇게밖에 말하지 못할까?’라는 기억을 방패 삼아 외면했을지 모른다. 그 사랑을 나는 오랫동안 외면했다.



부모님도 어려웠을 거다. 요즘처럼 유튜브도 없고 육아 관련 책도 드물던 시절, 그저 본인들의 경험을 믿고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었을 거다. 서른이 된 지금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될 것을 입을 꾹 다문 채 지갑만 연다.



오늘 이 글은 지난날의 반성이자 어쩌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작은 용기일지 모른다. 며칠 뒤 가족과 식사할 때는 애늙은이가 아닌,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 다음과 같이 다짐해 본다.



엄마 아빠

내가 많이 사랑해.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우리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자.


아직 우리,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잖아.


그러니까 자주 만나고,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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