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채집- 마음에 감기가 들었다

불안의 감정

by 김온지



마음에 감기가 들었다. 몸이 비교적 튼튼해서 잔병치레가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에는 감기가 자주 찾아온다. 처음엔 내 상태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연락은 물론이고,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친구들의 근황과 소식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제일 친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벅차게 다가왔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지금 평소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늘 즐겁고 설레기만 했던 시간이 순식간에 부담과 불안으로 바뀌었다. 누군가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잡히면, 전 날부터 알 수 없는 스트레스가 쌓였다. 마치 면접을 가는 사람처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쉴 틈 없이 돌려댔다. 그러지 않아도 될 걸 알면서도, 쓸데없는 불안과 생각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현재에 대한 일, 미래에 관한 대화가 나오면 숨이 턱턱 막혔다. 내 속도대로 전진하고 있다가도, 친구들을 만나면 그 전진이 경쟁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불안은 일상이 되었다.


마음에 감기가 걸린 순간, 나는 불안이와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다. 별일 없어도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별말 아니어도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그동안 꾸역꾸역 버텨오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 마치 빵빵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지치기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 밑에 오래 있었던 것도, 추운 날 옷을 얇게 입고 나갔던 것도 아닌데. 처음엔 정확한 원인이 없는 내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금 오래 버텼고, 조금 오래 참았고, 조금 오래 밝게 지냈을 뿐. 이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깊이 이해하려 하고 모든 걸 들어주면서 정작 본인 스스로는 제대로 챙기지 않아 몰랐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질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내 상태와 고민을 말하려 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혼자 안고 가는 게 속 편했다. 조용히, 혼자서. 그게 나랑 어울렸다.


금방 사라질 줄 알았던 감기는 생각보다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찾아오고, 괜찮은 듯 웃고 있는 날에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불안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어릴 때 먹기 싫어하던 딸기맛 물약이라도 삼켜서 얼른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처음 감기에 허덕였을 땐, 이런 날을 인정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나약하고 예민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몰아붙이다 결국엔 몸살처럼 더 크게 앓아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요즘엔 나만의 물약을 만들었다. 불안을 억지로 없애려 애쓰지 않고, 그저 오늘의 상태를 인정하는 물약.


내가 나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마음이 서서히 편안해졌다. 조금 답답하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혼자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은 하루 정도 미루기도 한다. 좋아하는 애니를 틀어두고 만화책을 읽으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감기가 옅어지는 날도 있었다. 약을 먹어도 단번에 낫지 않는 것처럼, 감정도 곧바로 사라지진 않겠지만 전처럼 부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아직도 마음의 감기는 불쑥 나를 찾아온다. 불안은 여전히 나를 흔들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다시 균형을 찾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가끔은 멈춰 서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다고 조용히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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