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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Apr 18. 2020

say cheeeeeese!

내가 꼼짝 못하는 것.

우유 대신 두유나 오트 밀크, 아몬드 밀크 등 우유 대체음료를 구비해 놓은 카페를 발견하면 반갑고 감사하다(두유만 있어도 땡큐). 그런 곳에선 식물성 음료를 넣은 따뜻한 티 라테를 주문해 양껏 마신다. 우유의 과도 섭취를 조심하고 있다. 굳이 흰 우유를 사서 집에 두고 마시는 일은 거의 없음에도 (***예외 상황 아래 추가) 경계를 풀 수 없는 이유는 좋아하는 음식 곳곳에 우유가 들어가기 때문이고, 쾌락주의자인 나는 눈 앞의 미식을 두고 자제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맛과 향이 풍부하지만 금세 녹아버리고 마는 품질 좋은 아이스크림은 어김없이 우유 함량이 높다. 우유나 크림을 넣은 빵과 디저트는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고, 크림 파스타나 수프도 좋아하니까 우유 한 팩 사서 마시지 않는 날에도 내 몸은 우유로 충만한 상태다.

다양한 유제품 중에서도 정말이지 꼼짝 못 하는 건 치즈다. 카페에서 덜 섭취한 우유의 양은 치즈 먹는 데에 아낌없이 올인한다. 아무리 배가 부른 상황에서도 누군가 내게 속이 쫄깃한 바게트와 치즈를 내온다면 백이면 백, 곳간이 먼저 거덜 나지 내가 먼저 먹기를 멈추는 일은 없으리라.

미국과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은 치즈 마니아의 전성기였다. 있을 것도 없고, 없을 것도 없는 학생 신분의 작은 스튜디오형 아파트. 그리고 그 사이즈에 걸맞은 작은 냉장고는 변변찮은 식재료만 겨우 갖추고 있고 그중 절반은 맛있는 재료가 될 시기를 놓쳐 시들시들하기 일쑤였지만, 치즈 셀렉션만 누구에게도 뒤지는 일이 없었다. 슈퍼마켓에선 언제나 홀린 사람처럼 치즈 코너를 찾았고 그 결과 적게는 3-4종, 많게는 7종까지 냉장고에는 늘 치즈가 풍성했다. 먹기도 잘 먹어서, 장 볼 때마다 치즈를 새로 구입하곤 했다.

순두부 같이 순수한 맛의 코티지나 리코타 치즈. 베이글과 찰떡궁합인 크림치즈. 부드럽고 진득한 브리와 카망베르, 풍미가 강한 묑스테르 같은 연성 치즈.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하바티나 에멘탈, 프로볼로네 같은 단단한 치즈는 슬라이스 된 것을 사서 샌드위치에 넣어 먹곤 했다. 부슬부슬 부서지는 짭짤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나 단맛과 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콩테 같은 건 툭툭 썰어서 크래커와 곁들이지 않으면 맨입으로도 야금야금 잘 주워 먹었고. 김밥처럼 흰 포장에 둘둘 말아 파는 염소 젖 치즈는 그 생김새가 귀여워서 종종 사 먹었다.

(일러스트 출처: @yournakedcheese) 성수동에 위치한 <유어 네이키드 치즈>에서 치즈 모둠을 주문하면 각종 과일과 치즈, 올리브, 햄 등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요즈음엔 레스토랑을 가거나 와인을 마실 때 말고는 새로운 치즈를 접하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는데, 몇 개월 전에 새롭게 홀딱 반한 치즈가 난데없이 등장했다. 이름하야 브라운 치즈. 노르웨이의 치즈회사인 시노베에서 무려 150년째 만들고 있는 치즈다. 이걸 발견한 곳은 성수동의 매력적인 치즈 전문점인 ‘유어 네이키드 치즈(Your Naked Cheese). 와인과 치즈, 간단한 안주거리와 식재료를 파는 이 곳에서 치즈 모둠을 주문했더니 그 속에 빼꼼, 요 녀석이 들어있었다.

브라운 치즈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과 그윽한 색, 꾸덕꾸덕한 질감은 캐러멜과 땅콩버터를 고루 떠올리게 한다. 치즈에서 어떻게 이런 맛과 질감이 날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유청을 오래 졸인 데다가 크림을 넣어 완성하는 게 그 방법이란다. 나는 와인과 곁들여 먹었는데, 토스트에 올려 먹기도 하는 것 같다. 블루치즈처럼 치즈 특유의 향이 강하지도 않고, 맛도 어렵지 않아서 아이를 포함해 누구나 좋아할 맛이지만 처음 도전한다면 내가 그랬듯 치즈 모둠으로 안전하게 즐기고 나서 단독으로 구매하기를 추천(유어 네이키드 치즈는 배달 어플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주문도 가능하다).

(이미지 출처: @synnovr.korea) 시노베의 브라운 치즈. 귀여운 패키지도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시노베 브라운 치즈에 대해 검색을 좀 해봤더니 즐거운 소식을 알게 됐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4월 17일부터 30일까지 시노베의 치즈 팝업스토어를 연다는 사실이 그것! 치즈 구매뿐 아니라 생크림과 치즈를 함께 곁들인 와플도 선보인다고 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는 20일 이후에 가보려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우울한 뉴스 때문에 힘이 잘 빠지는 나날이지만, 간만의 맛있는 소식 때문에 다시 기쁘고 힘이 난다.


(이미지 출처: @synnove.korea) 시노베의 팝업 스토어에선 브라운 치즈를 뿌린 바삭바삭한 와플 디저트도 만날 수 있다.


***흰 우유를 사는 예외상황:  천국으로 가는 방법 하나. 뜨거운 꿀을 호호 불어먹는 호떡이나 막 튀겨서 따끈따끈한데 그 위에 설탕을 자글자글 뿌린 꽈배기를 차고 신선한 흰 우유 한 잔과 같이 즐겨보라. 기가 막힌 조화에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니! 특히 약간 지쳐있을 때(이 조합을 처음 접한 건 로케이션 화보 촬영장이었다) 먹으면, 말 그대로 혈관에 젖과 꿀과 기름이 좔좔 흐르는 느낌. 에너지를 즉각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레드불 필요없숴!)

#내돈내산 #광고아닙니다 #아는사람이하는것도아니에요 #발좁음


커버이미지 출처: 웨인 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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