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간절함

by 루나


"그녀는 좀 슬프고 많이 외로운 사람이야.“


그는 마치 내가 나의 아빠를 얘기할 때처럼 자신의 엄마에 대해 덤덤하게 얘기했다.





제이 엄마는 프랑스 이민계 3세로 캐나다 퀘벡에 살고 있던 제이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채담이라는 지역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이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유치원 교사였고 외할아버지는 '정말 피리를 불고 한 때 진짜 잘 날리던 카사노바'였는데 덕택에 외할머니는 아들 셋, 딸 셋을 낳고도 바람을 피던 외할아버지 덕에 자식들이 한참 어릴 때 이혼은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들을 따로 데리고 나와 살기 시작하셨다.


그런 기회가 있으셨는데도 싫다고 하신 건지, 아님 할아버님 덕분에 남자에겐 정말 질려서 그러셨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한 분 만나보지도 않으시고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없는 남편에 자식들을 다 키워 시집, 장가보내셨고 캐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저임금 요양원으로 은퇴를 하셨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며 뜨개질을 하시는데 가족 중에 할머니가 떠 주신 물건이 없는 사람이 없다. 물론 나도 이불에, 팔십 년대 스타일 스웨터와 양말을 받은 적이 있다.


눈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시고 자신이 뜬 스웨터를 입고 푸근한 느낌의 외할머니를 제이의 엄마가 또 설명했다.


"She is sad

and lonely

french woman."


...

...

..

.

....

.......

...

...

...

왓?



제이의 엄마는 열여덟 살, 처음 만난 남자친구, 제이의 아빠와의 관계에서 제이를 낳게 되었다.

물론 사고였고, 원한다면 수술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했고 그러므로 인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없었고, teen mom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몇 개월 후, 제이 아빠와도 결별하게 되었고

내가 알기론 이후 정말 많은 남자를 만났고, 어떤 남자와는 아이도 낳았지만

그녀는 오늘도 아직도 미혼이다.




캐나다에 도착하고 그 다음날 그녀를 만났다.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시차 때문에 자고 있었는데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열고 말했다.


"어, 얘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

' (me..) 지금요? '


제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스물두 살 이었으니 제이 엄마는 고작 마흔이었다.

그녀는 크고 아름다운 눈에 염색을 해서 더 까만 생머리에 짝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는 그녀가 슬프고 외로운 프랑스 여자라고?


Well, I had culture shock, people.

How young my boyfriend's mom looked in the moment.


게다가 여자는 당시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남자와 연애 중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슬프고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한 3년 전쯤,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짐을 다 챙겨 채담에서 한 열 시간, 운전거리로 떨어진 남자의 고향으로 이사를 갔다 제이의 엄마가 얼마 전 돌아왔다.


챙겨 들고 간 짐은 어디로 갔는지 갖고 돌아온 것이 별로 없고,

여자는 눈 밑이 움푹 패여 갑자기 산 송장 꼴이다.

그 실하던 까만 생머리는 어디 두고 머리를 금발로 만들어놨는데 머리에 더러운 빗자루를 얹어 놓은 것만 같다.

내 눈을 보고 얘기를 하지 못한다.

자기 손자들을 보고도 웃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운다.


따라갔던 남자는 마약쟁이에 알코올 중독자에 Women Abuser였다.


사실, 남자의 이런 문제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어서 그녀가 그 남자를 쫓아 이사 간다고 했을 때 모두들 말렸다.

그리고 아들인 제이는 이사 가면 엄마랑 연락 끊겠다고 엄포도 놓아 보았지만 그녀가 말했다.

"It is my life!"


맞다.

그녀가 원하는 인생을

다른 사람이 살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결정이란 쓴 고배를 마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정말 폐인이 되어 바닥에 질질 끌려 돌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I'm sorry.."


근데 이걸,

그녀가 두 번, 세 번이나

똑같은 사람과

반복했다.


사랑이 뭔가.

외롭다는 건 뭔가.


우리는 슬픔에 얼마나 적응력이 빠른 인간인가.

And how naive, that we can always make

same mistakes, over and over AGAIN.





외롭고 슬프게 사는 자신의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던 그녀가 그녀의 아들이 설명한 대로 외롭고 슬픈 여자라는 것은 참 묘한 아이러니이다.

물론 그녀는 살아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는 여자판, 우리 아빠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도 싶고.

And there comes my understandment with Jay.

할머니에게 나름대로는 시어머니이신 이분의 이야기를 하면 그러신다.

'참, 남자 복 더럽게 없는, 팔자 사나운 여자 구먼.'

한국말로 얘기하니 정감 있다.


마치 토네이도를 직방으로 한 방 맞은 동네같이

그녀는 산산조각이 나 돌아왔지만

죽을 순 없으니깐,

그래도 살아야 하니깐,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엄마를


내가 아는 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한은 도와

다시 살게 해야 하니깐,

그렇게 해 주는 게

다 부서진 조각 위에 올려진 엄마를 모시고 사는 것보다 나으니깐,

어쩌면 내 욕심에 돕기 시작했다.


갈 곳이 없어 우리 집 거실에 묵던 시어머니에게 아침이면 커피를 내려 머리 위에 올려놓고 밥 먹이고 세수시켜 생후 이주일이 된 둘째 아이를 아기띠에 두르고

엄마 얼굴보다 더 부은 산기를 빼지도 못한 채, 여성 보호 기관에 이 여자가 지낼 수 있는 아파트를 구해달라고 편지를 써 갖다 내고,

경찰서에 전화해 그 정신없는 놈 고소하고 (그랬더니 엄마가 취소함)

백수니 이력서 만들어 뿌려주고

저녁을 만들어 먹였다.


힘들었지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옛날

아빠한테 피가 터지도록 맞고 가출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울며 말한 적이 있다.

'왜 하필이면 나예요?

난 잘 살고 싶은데,

왜,

하필이면 나예요?'


그때 느끼던

그 삶에 대한 간절함이

그녀가 내 앞에서 울 때마다 생각나서.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녀는 아파트를 구했고 (너그러우신 캐나다 정부, 고맙습니다.)

아직 실업자긴 하지만 그래도 일을 알아보고 있고,

전화를 좀 덜 하기 시작했다.

Well, no news is good news, people! (하하)



우리 아이들이 어디 나가서 자신의 엄마, 나에 대해 설명한다면 난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만약에 아이들이 날 슬프고 외로운 여자라고 설명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애들 머리 빡빡 밀어버리고 싶을까? 하하)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다.

내가 타고 온 배는 많은 수리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직 물 위에 잘 떠 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더 드는 시절 같다.


Art Work By Esra Roise



"Two things define you.

Your patience when you have nothing, and your attitude when you have everything."

—Unknown #ThingsToNever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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