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작가가 꿈이던 나는 당연히 인문계 여고를 진학했다.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학교 신문 편집장을 했고, 중고등학교 내내 나가는 작문대회에서 받는 상금으로 두둑한 용돈을 마련할 정도로 수상을 했고 인정을 받았다.
부모가 없이 조부모와 사는 아이, 할머니는 부모의 부재가 내 배경의 편견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늘 후회하지 않을 현명할 선택을 해야 한다고, 당당히 살려면 흠 잡힐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붙도록 얘기를 하셨다.
조용하고 믿을만한 아이.
어려운 환경에 살면서도 어두워지지 않는 아이.
글을 쓰겠다고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나는 운동이라곤 걷기, 자전거 타기, 줄넘기 정도.
인문계 여중 여고, 심지어 여대까지 들어간 나는 내가 정적인 사람이라 단정했다.
좀 덜 먹고 운동을 하면 55 사이즈, 보통은 66 사이즈의 한국 표준으로는 '살만 좀 더 뺐으면 괜찮을 텐데' 사이즈였던 나는 스물다섯쯤 캐나다에서 안 먹어 다이어트를 해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청바지 사이즈 0을 입게 되었는데도 전생에 말 타던 장군쯤 됐을 타고난 통뼈를 탓하며 비련의 드라마 여주인공쯤 되는 말라깽이가 되지 못할 몸을 탓했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일 년 반 정도 지났을 때쯤 허리, 무릎, 손목이 너무 아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무게는 팔십 킬로. 어렸을 때부터 늘 운동을 해 와 근육질인 남편 옆에 불은 가락국수자락같이 보이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그간 쭉 나에게 운동을 권해온 남편에게 여자가 운동하면 근육 붙어 안된다고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캐나다에 와 10년간 살던 깡촌 마을의 집을 팔고 인근 마을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고 아이들의 수영강습을 받는 YMCA에서 아프고 삐걱대는 몸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달리 운동에 대해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나는 헐렁한 옷에 늘 모자를 쓰고 트레드밀에서 땀이 날 때까지 걷고 달리기 20분, 헬스클럽에 있는 손쉽게 웨이트 트레이닝이 가능한 기구들을 이용해 인생 삼십 살 차나 되어 없는 근육으로 근육을 만들기 시작하고 근육통으로 이부프로펜을 먹는 날이 잦아졌다.
운동을 가면 딱 한 시간. (지금도)
아이들 걱정 없이 늘 귀에는 헤드폰,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을 들으며 운동을 하길 한 달, 일주일에 두세 번에서 시작해, 세네 번으로 늘리고, 그것이 세 달, 반년, 일 년, 일 년 반이 지나자 찾아온 변화들은 감격스러웠다.
근육 없는 통통한 몸에 저질체력이던 내가 근육 있는 탄탄한 몸이 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초밥집에 일하고 살림을 하는데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지게 되면서 먼저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감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남편의 헐렁한 셔츠에 운동복 바지를 입고 운동하다 위아래 색깔 맞춤해 몸에 딱 붙는 레깅스와 스포츠 브라를 입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근육질 남편 옆에 초라하게 느껴지던 잔뜩 불은 우동신세에서 킴 카다시안, 비욘세의 볼륨 있는 몸매가 미국, 캐나다 전역의 워너비 트렌디 몸매가 되어가는 마당에 마침내 내 몸도 아름다운 몸, 남들과 비교할 필요할 필요 없이 나에게 주어진 나에게 가장 적합한 몸이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운동 후에 찾아오는 허기를 단백질 파우더 셰이크로 대신하고 공복에 아침운동을 하고, 종교를 다루듯 내 몸을 신성하게 여기고 좋은 음식, 균형 있는 다이어트를 했고 혼자 하는 운동이 지루해지면 YMCA에 있는 운동 클래스에 등록해 운동을 배웠고 종종 이런 운동을 어렸을 때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도 되었지만 꾸준히 운동을 지난 십 년간 해왔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잖나.
그나저나 인문계 학교에서 공부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려면 체육시간이 훨씬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덕체 합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이들은 늘 사교육으로 운동을 시킨다. 건강한 몸으로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진실이다.
격렬하게 웨이트트레이닝 운동 10년 후,
난 여전히 66 사이즈다.
하지만 레그 프레스는 100킬로 그램, 스쾃, 데드 리프트는 60킬로 정도 치는 파워풀한 몸이 되었다.
굵은 다리면 좀 어떤가.
BBL(힙업수술)없이도 엉덩이 부심 끝장 나는 이 교포 어머니(나)께서 제일 좋아하는 날은 Leg Day(하체운동 하는 날).
요가도 해봤고 필라테스, 복싱, 바이크, 등산도 해 봤지만 헬스클럽에서 무게 치는 것이 적성에 맞는 내가 정적인 사람이네, 영락없는 인문계 체질 이런 얘기를 하며 나를 한참 잘못 판단했지.
뱃살도 좀 있고 팔뚝도 두껍지만 괜찮다.
운동을 시작함 후 나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체력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같은 젓가락 몸매는 될 수 없어도 그들의 몸매와 비교할 필요 없이 내 몸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지난 십 년간 꾸준히 해 온 운동이 미친 가장 큰 선한 영향력이 아닌가 싶다.
법이 바뀌어 사십 살이 되려다 서른아홉인 2023년.
나는 내 인생의 무게를 충분히, 그리고 잘 짊어지고 사는 따뜻하고 재밌고 밝은 여자.
무거운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이 아님을 아는 현명한 사람.
나는 더 이상 상상만 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살 수 있고 갈 수 있고 가질 수 있게 된 현실 속에 오늘의 나는 강하고 무겁다.
나는 나를 열렬히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배워온 내 인생의 무게.
참,
여러분,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적합한 무게를 가진 몸을 가지려면
운동하세요!
좋은 거 나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