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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Oct 19. 2022

나오길 잘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집에 들어가면 나오기가 싫어지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엄마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하는 날씨임을 직감했건만 나의 손이 문제인가, 나의 발이 문제인가. 손은 벌써 집으로 가는 층을 눌러버렸고, 신을 벗은 발은 시원한 자유를 누리며 게으름을 피운다. 몸이 문제인지 마음이 문제인지 혹은 둘 다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에 맞서는 내 기억이 있다.  것은 가을에 대한 기억이다. 가을은 무조건 좋았다는 기억과, 그리고 가을이 지나가면 언제나 아쉬움에 후회했다는 기억. 겨울을 싫어해서인지, 가을이 좋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둘 다 인 것 같다. 무튼 나는 가을이 참 좋다. 가을 햇살에는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 햇살은 피부에 치명적이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거짓말하지 않고 내 목을 내려쳤다. 칼보다 날카롭지는 않아도 뜨거운 건 분명했다. 하늘은 비현실적일 만큼 높고 푸른데 햇살은 겁나긴 하다. 그래도 가을바람만큼 좋은 것이 있던가.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건 건강이라고 했던가. 가난한 자들에게 자연은 공평하다. 다만 누릴 시간이 부족한 것인지도.


나에게 시간과 건강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 무조건 '고'다.
이 계절은 더없이 짧다.
그러니 신발을 신어라.


목적지가 있었다. 오늘은 동네에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에 가볼 예정이었다. 어제 들렸지만 헛걸음이었다. 월요일은 휴관이라니. 오늘은 단단히 빈 가방을 동여매고 언덕을 올라간다. 오래된 초등학교 운동장 안에는 아이들이 방과 후 축구를 즐기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아이도 언젠가 저 틈에 있겠지. 앞서가는 사람은 왠지 수험생 같다. 나도 불과 몇 년 전에는 저런 수험생이었지. 그때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공부에서 벗어난 안정된 삶이란, 과연 나에게도 오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로 걸었던 도서관 올라가던 길.



길목의 바람, 소리, 풍경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도서관에 입장하였다. 나는 도서관을 사랑한다. 대학교, 대학원 시절에도 방황할 때마다 도서관에 들렀다. 책을 읽지는 않아도 위안을 얻었다. 그냥 그곳의 기운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 도서관은 더 좋아졌다. 정말 여느 카페보다 더 훌륭하고 멋지다. 그리고 무작위로 고른 세 권의 책을 창가에 두고 한 줄 한 줄 읽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나서길 잘했다. 책을 펴보길 잘했다. 글을 쓰기를 잘했다.


나 오늘 참 잘했다. 무조건 해보라는 말을 무조건 수용하기도 벅찰 때도 있다. 의무감으로 하루를 가득 채운 어깨가 무거울 때도 많다.


그래도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당신이 좋아하는 곳을.

해봤으면 좋겠다. 가봤으면 좋겠다.


나오기 잘했다.

가을바람. 골목길, 책, 그리고 살아가는 나.


좋아하는 것을 아무튼 많이 하는 내가 되려는 다짐을 잔뜩 하고서 집으로 간다. 그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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