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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Jul 13. 2022

가짜 행복 풍선에 질식하지 않으려면

“엄마 오늘 비가 오네. 앙....”

“그러네. 비가 많이 오네?”

“오늘 소풍 가기로 했잖아. 그런데 비가 오면 못 가잖아. 으앙...”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창문으로 다가가 날씨를 확인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강가로 가서 텐트를 치고 놀 참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주지 않는 날씨에 속상한 마음을 울음으로 표출했다. 키가 한뼘 더 자란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 전에 했던 약속들을 잊지 않았다. 아이는 ‘기억’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억을 잊는다면 불행지수는 낮아질까?’

문득 질문이 생겼다. 


아이는 기억을 하기 전에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오늘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웃음이 나고, 해가 보이면 해님이 나왔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아이의 뇌가 점점 진화되고 이제 아이는 기대와 충족의 개념이 생겨버렸다. 어떤 기대를 갖고, 그리고 충족하게 되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서럽다. 엄마 탓, 날씨 탓, 친구 탓을 하다가 제 풀에 지치는 모습을 목격하는 날에는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이는 오늘의 오늘대로, 내일의 내일대로 만족할 텐데. 하지만 생명은 진화하고, 우리는 노화 직전까지는 성장하고 발달하는 게 수순이다. 그 수순을 잘 따라가고 있는 아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오늘 비가 오니까, 장화 신고 밖에 나가서 비 놀이하자.”

“비 놀이? 좋아. 너무 좋아.”


아이들은 단순해서 더 빨리 행복해진다. 다른 기대감이 생기면 또 이전 일은 잘 잊는다. 나처럼 생각 많은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장화를 꺼냈다. 

장화를 신고 빗속을 헤집고 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체 행복의 기준은 뭘까?' 


나는 그토록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것을 꿈꿨고 그리고 그중 몇 가지는 이루기도 했고, 또 그중 몇 가지는 실패하기도 했으며, 어떤 것은 포기하기도 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심취했던 어린 시절에는 ‘왕자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만이 행복의 기준인 줄 알았다. 동화를 더 이상 읽지 않던 시절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가 전문직을 가진 여성이 되어야만 행복할 줄 알았다. 

 그렇다면 왕비도 전문직 종사자도 아닌 지금 나는 행복의 기준에는 많이 못 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기억을 하지 못하던 유아기를 제외하고는 ‘행복해’라는 말보다 ‘행복해지고 싶어’라는 말을 더 많이 한 것은 틀림없다.


오늘은 나와 1900살 차이가 나는 로마의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책을 펼쳤다.


“행복을 누리고 싶거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몇 가지로 줄여라" 어느 현자의 말이다. 그렇게 하면 몇 가지 일이나마 잘 이행한 데서 오는 만족감과 마음의 평정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매번 그대 자신에게 '이 말고 행동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자문하라. 그러면 불필요한 행동뿐 아니라 생각들까지 더 이상 뒤따르지 않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 글을 음미하는 동안 커피 한잔이 내려졌다. 

여전히 꿉꿉한 날씨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맡을 때 나는 기분이 무척 좋다. 


그래, 비 오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고, 더불어 나에게 글을 쓰는 시간이 있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내가 있다. 


왜 나는 부단히 더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는가? 

그것이어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그것들이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가? 


빗속에서 장화를 신고 뛰어다니다 비가 슬슬 그쳐오자, 아이는 또 시무룩해졌다. 

“엄마, 비가 그만 오려나 봐. 어쩌지?”

“그러게?”


행복을 미리 정해놓지만 않는다면 우리 삶에서 행복을 느낄만한 요소는 무척 많다. 아이는 또 집에서 재미있는 놀거리를 찾을 것이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의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불행감을 선사하는 가짜 행복 풍선을 터뜨려야 한다. 

그렇다. 

긴 생각이 끝난 나는 속으로 말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비가 오면 오는데로 삶이 선사하는 그때 그때의 행복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삶에는 행복을 기다리는 불행의 풍선들이 채로 질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들아. 엄마는 참 행복하다.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나여서, 그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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