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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Oct 29. 2020

나의 화려한 20대

화려하게 한 번이나 살아볼걸

나는 20대에는 거의 공부만 했다. 그렇다고 정말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십 대 후반에 심리적인 불안감과 강박증에 시달렸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막중했는데 때마침 고3 담임선생님과의 깊은 갈등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집안에 우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공부에 전념을 못할수 밖에 없는 핑계를 갖다 붙였던 것이였지만... 고2 때 담임선생님은 학부모 상담에 소위 스카이 중 하나를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엄마에게 했기에 나는 집안의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실제 책상에 앉으면 정석 한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나는 잘못된 단추를 하나씩 끼워나갔고 어느새 원치 않는 대학, 진로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래, 어쩌다보니 나는 가방끈이 길어졌다. 대학 때 유학을 꿈꿨고 실제로 해외대학에 조건부 입학 허가도 받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나는 타의반 자의반 다들 원하는 안정을 택했다. 차선책으로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였지만 나의 낮은 자존감 덕분에 나는 취업의 문턱에서도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는 제일 안정적이고 경쟁율이 낮은 직장을 선택했다. 모든 과정이 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꼭 더 나이든 사람처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직장은 다니고 있지만 직장에서 나는 꼭 유령같은 존재였다. 소리없이 일하고 소리없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허기짐을  채우려고 쇼핑으로 채웠다. 쇼핑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서 백화점에 들렀고 그렇게 예쁜 옷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에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월급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이 옷 저 옷 입어보고 하나씩 사다 보니 돈이 모이지를 못했다. 그때는 그렇게 갈피를 못 잡았다. 못해본 미술공부에 대한 미련도 남았다. 게다가 당시 썸을 타던 남자 친구도 서서히 정리를 해야 할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20대 시절을 화려하게 보냈다. 내 말은 20대를 그렇게 나홀로 화려하게 방황했다. 결국 통장잔고는 0인 상태에서 나는 나의 진로도 못 정한 채 30대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직장선배들을 보면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듯 했다. 일을 하고 돈을 쓰고 또 맘에 안들지만 회사에 와서 하루를 보내고 휴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다들 유령처럼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그랬다. 그때 나는 무작정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 홀로 책 사이사이를 서성이며 수많은 책을 그저 앞에 두고 한 권도 펴지 못했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혹은 그 책을 골라도 될지 나는 아무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20대를 허송세월로 보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곧 30대의 노처녀가 되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30대가 노처녀로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었다.)그렇게 29살 겨울이 되던 때 나는 2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렇게 용기를 낸  나에게 가족들은 하나같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시집만 가면 속 시원할텐데 뜬금없이 사표를 내고  내 길을 찾겠다는 것이 매우 이기적으로 보였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내 선택이 잘못되진 않았을까 걱정이 더 컸다. 실제로 그 이후도 순탄치만은 않았던 삶이다.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는데, 그렇게 한국을 떠나고 싶던 나는 결국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임용고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시험 준비하는 꿈을.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악몽에서 깨어난다.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이 무의식이라는 것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정말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나의 진로를 이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무의식에서도 무언가를 택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도 썼지만 결국 내가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한 번이라도 갔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달려 나가야만 했다. 내가 항상 꾸는 꿈에 시험을 망치는 결과는 없다. 떨어지거나 붙거나 하는 장면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나의 열정을 쏟아부은 적이 없던 그 과정에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꿈에서조차.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방황해마지 않던 20대에 차라리 화려하게 내 시간을, 내 능력을 사치할 것을. 내가 가진 것들을 다 쓸 수 있다는 것도 자존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하면 안 되겠지만. 나는 너무나 아꼈던 것이다.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나의 감정조차 아껴서 늘 비축했던 것이다. 다음 시간을 대비해서 늘 저장해두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마음의 곳간에서 썩어버렸다. 지금은 전혀 입지 않아 다 버려버린 그때 그 비싼 옷들처럼. 내가 결국 적시에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찬란하게 빛나는 저마다의 인생을 꿈꾼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쌓아두기만 하고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보석들은 세상에서의 돈과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게도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차라리 화려하게 열정적으로 쓰느라 바쁜 삶이 더 좋아 보인다.


 40대에 막 진입한 새내기인 나에게 말한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걱정 마. 화려하게 쓸 준비가 되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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