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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주 Sep 18. 2023

'너의 죽음'을 견딜 수 있을까

생전장례식 이후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과 ‘아름다운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래서 더 무거운 죽음을 비롯해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었다. 당장 내일 사라질 수도 있는,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해 보았고 이외에도 잘 죽기 위해, 잘 살기 위한 사유와 그에 맞는 행동을 해보려 했다. 


베개로 쓰기 딱 좋은 두꺼운 책도 읽고, 유튜브 영상도 보고, 온라인 강의도 듣고, 같은 이슈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눴다.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죽음 준비를 천천히 해보기도 했다. 


예전에는 ‘나의 죽음’에만 관심이 있었다. 언제든 올 수 있는 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지 고민이었는데 간단해졌다. 자신의 죽음은 느낄 수 없다. 죽음이 끝이라면 슬픔이나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니 두려워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너의 죽음’이다.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던 사람이 떠나가는 일은 괴롭다. 가까웠던 사람이 떠나버린 경험을 아직 해본 적이 없지만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덜 아프려면 후회 없는 관계를 맺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죽음을 떠올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야지 다짐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금세 소중함을 망각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마치 평생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지 않기에 생기는 일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의 태도는 다르다. 모두가 죽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진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몇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존재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자꾸만 잊혀진다. 

한편으로는 이것 또한 인간의 한계이니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 싶었다.  


어떤 강의에서 ‘인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지고 담담해지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너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누군가 떠나간다 상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미어지는데 내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후회 없이 보내주고 싶지만 후회 없는 죽음이 어디 있을까. 


그저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며 그때의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할 수 있기를. 언젠가 다시 보자고 웃으며 눈물 흘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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