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 이희영
주인공은 죽은 형의 흔적을 따라가며, 애써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다.
흩어진 조각을 그저 형이라 여기며, 각자가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내용은 죽은 형을 기억 저편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삶 속에서 받아들이기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 어느 누군가에게 고통이었던 '귤'이 더 이상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도록, 치유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가장 지냈던 친구는 형이 무던한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오래전 담임은 조용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이라 했다. 그리고 엄마는 형을 애교 많은 수다쟁이 아들이라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상대만 알고 있다. 그러면 과연 곰솔이 가지고 있는 형의 남은 조각은 무엇일까?" (p. 383)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조각된 한쪽 면이 전부다. 어쩌면 인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이들에게 서로 다른 기억을 심어 준 형처럼, 애써 아닌 척 누구와도 잘 어울린 도운처럼, 분명 나도 마찬가지겠지." (p. 407)
우리는 상황과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기도 하지만, 대게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표현된 모습이기도 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연스러움으로 이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나'만 알고 있는 것처럼 상대의 모습을 바라볼 때도, 어떠한 시간과 노력이 거쳐온 것임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혼자 있을 때의 나, 부모와 있을 때의 나, 부모로서의 나, 친구와 있을 때의 나...
떠올려보면 맡은 역할에 따라, 놓인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의 내가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모습만을 '진짜 나'라고 여기며 과시하거나 쉽게 비난하지도 말자.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상황과 역할에 맞춰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그것을 적응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결국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모두 알 수 없으므로
내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이 전부라는 착각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하거나 단정 짓지 말자.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형의 흔적을 따라가듯, 우리 또한 나, 너의 여러 흔적을 천천히 이해하는 과정으로 여기 보면 어떨까.
우리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없이 서로 다른 면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 모습이 그러한 것처럼 받아들여보자.
이 전제를 통해 우리는 내가 보는 너에게 덧붙인 기대 대신 좀 더 이해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